“우리는 오지 않는 봄을 99년째 기다리고 있습니다. 1919년 3월1일 ‘만세’ 소리는 오늘 이곳에서도 재연되고 있습니다.”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8일 낮12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3·1절을 하루 앞둔 이날 초중고생과 교사 200여명은 우산과 피켓을 두 손에 든 채 강단을 묵묵히 바라봤다. 이내 사회자를 따라 수요시위 대표곡 ‘바위처럼’을 부르는 이들의 노랫소리가 대사관 앞 평화로를 가득 메웠다. 이날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가 주최한 1,32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는 아이들과 젊은 여성들이 더해져 평소보다 2배가량 많은 인원이 참석해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강단에 오른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여러분도 오늘 만세운동을 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전날 서울시와 서울시인권센터가 공개한 위안부 총살 동영상에 대해 “일본군은 증거가 없다고 부정하고 있지만 진실은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라며 “3·1절을 부끄럽지 않게 맞이하려면 정부와 국제사회부터 여성 인권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대협 활동가들과 참석자들은 최근 법조계·연극영화계·종교계 등으로 확산된 성폭력 고발 움직임에 대해서도 공감과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한미경 화성여성회 대표는 “최근 여성들이 ‘나도 피해자다, 함께 연대하자’는 메시지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있다”며 “일본군 위안부 성폭력도 함께 연대해 가해자들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자”고 강조했다.
집회에 참석한 홍희재(25)씨는 “3·1절을 앞두고 최근 여성들의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각났다”며 “피해자가 주변의 조롱과 의심을 견디면서도 나와주었다는 점에서 고발 운동의 시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라고 말했다.
정대협은 이날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를 밝히고 일본의 사과를 촉구한 고(故) 이효순(91) 할머니께 ‘100만 시민이 드리는 여성인권상’도 수여했다. 지난해부터 정대협은 100만 시민의 서명을 받아 일본군 성노예제를 세상에 알린 공로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고인을 대신해 상을 받은 아들 이동준씨는 “내 어머니는 결국 모든 이의 어머니였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도 같이 뭉쳐 이기자”고 전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30명이다. /신다은·손구민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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