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끝 에서 절규하면서...찰리 넘버 불러”
SG워너비 멤버 가수 이석훈이 뮤지컬 무대에 도전했다. ‘킹키부츠’ 오디션 무대를 본 오리지널 연출가 제리미첼에게 “love him(러브 힘)”이라며 찬사를 받은 이석훈은 롤라를 통해 세상과 맞서는 법을 알게 된 감성캐릭터 ‘찰리’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세계적인 팝스타 신디 로퍼를 비롯해 제리 미철, 하비 파이어스틴 등 브로드웨이에서 내로라하는 스태프들이 뭉친 뮤지컬 ‘킹키부츠’는 2014년, 2016년에 이어 한국에서의 세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킹키부츠’는 파산 위기에 빠진 아버지의 구두공장을 물려받은 찰리(이석훈·김호영·박강현)가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유쾌한 여장남자 ‘롤라’(정성화·최재림)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감성캐릭터 ‘찰리’와 외면과 내면 모두 높은 싱크로율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설득시킨 이석훈을 만났다.
Q. 지난 1월 31일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킹키부츠’가 개막했다. 첫 공연 소감과 10회 가까이 한 소감을 말한다면?
A. 첫 공연 끝나고 커튼콜 때 눈물 날 뻔 했다. 수고했다. 안 틀렸다. 다행이다. 이런 다양한 마음이 담긴 안도의 눈물과 기쁨의 눈물이 나오려고 하더라. 지금 9회 정도 했다. 조금씩 하나 하나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무대가 편해졌다 이런 건 아니다. 그 건 제가 피부로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한 신이 편할 때도 있고, 공연 전체가 떨릴 때도 있으니까.
‘고생했어. 잘 했어’의 눈물은 막공 때 흘리지 않을까 싶다. 저에게 굉장히 단호한 편이다. 꾀를 부리는 걸 싫어하고 더 몰아붙이는 성격이라서 그런가 보다. 막공 땐 스스로를 좀 더 격려하고 다독이려고 한다.
Q. ‘킹키부츠’란 작품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있나.
A. ‘뮤지컬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있냐?’면서 레이먼킴 쉐프에게 연락이 왔다. 좋은 작품이면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연결이 돼서 CJ E&M쪽에서 오디션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결과가 좋았고 이렇게 합류하게 됐다. 나중에 알게 된 건 김지우씨가 ‘제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남편 레이먼킴에게 추천을 했던 거였다. 찰리로 함께 나오는 김호영씨도 추천했다고 들었다.
Q. ‘킹키부츠’란 작품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A. 유투브에서 ‘킹키부츠’ 하이라이트를 먼저 보고 따로 풀 영상을 받아서 봤다. 작품을 보면서 찰리란 친구가 저랑 굉장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또한 팝적이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이 끌렸다. 일단 공연 자체도 너무 좋고 ‘진정한 나를 찾자’ 란 메시지도 좋았다 안할 이유가 없겠더라. 또 이석훈이란 가수가 뮤지컬로 데뷔했을 때 관객들에게 특별히 이질감을 드리고 싶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더더욱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등장하자마자 눈길을 잡아 끄는 ‘롤라’와 달리 ‘찰리’는 배우의 역량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질 수 있는 캐릭터이다. ‘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어떤 점으로 해석했나?
A. ‘롤라’란 캐릭터가 워낙 세기 때문에 ‘찰리’가 잘 안 보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찰리는 굉장히 우리 자신이랑 비슷하다. 어떻게 보면 무난하다고도 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눈과 귀가 쏠리고 주목을 받는 역할은 롤라다. 관객들이 코믹하고, 재미있는 여장 남자에게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게다가 롤라는 3시간 내내 나온다. ‘찰리’의 역할은 주목 받는 게 아니다. ‘킹키부츠’는 찰리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여지는 게 적을 순 있어도 찰리가 없으면 이야기 연결이 안 될 수 있다. 메시지를 주는 키 포인트는 찰리만이 할 수 있다고 봤다.
Q. ‘찰리’란 인물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A. 저는 사실 이 찰리라는 애가 되게 좋다. 찰리가 롤라처럼 코믹하게 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신을 망치게 된다. 무엇보다 후반 찰리가 토해내고 절규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 연결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달이 안 된다. 찰리는 평범한 우리 자신이라는 거죠. 그렇게 연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Q. 롤라와 공장 사람들에게 가슴 아픈 소리를 한 걸 후회하고, 또 아버지를 그리는 찰리의 눈물겨운 마음을 담은 넘버 ‘소울 오브 어 맨’(The Soul of a Man)을 많은 찰리들이 어려워했다. 석훈씨는 어떤가?
A. ‘솔’ 음이 나오는 최고의 넘버다. ‘솔’ 음이 끝나면 체력이 바닥이 난다. 가수 할 때 라이브에서도 비 플랫을 낸 적 없다. 한계음이다. 이걸 뮤지컬 무대에서 라이브로 내야 한다. 그것도 몸이 지치고 쓰러질 때 불러야 해서 죽을 것 같더라. 죽을 때까지 부른다. 사실 그 노래를 부르면 (스토리상) 힘이 남아있음 안 된다. 음이 높기도 높지만 감정도 슬프다. 인생 끝 바닥까지 가서 절규하면서 아빠에게 속마음을 말하는 장면이다. 그걸 속에서 머금으면서 하겠나. 저만 그 넘버가 힘든 줄 알았는데, 수 많은 뮤지컬 배우가 불러도 힘든 노래라고 했다. 그래서 위안이 됐죠.
Q. 공연 시작 전 본인만의 특별한 행동이 있나
A. 휴대폰에 써 놓은 글귀를 보고, 거울을 보고 이야기를 한다. 찰 리가 무대에 등장하면서 쭉 밀면서 들어오는데 그때부터 ‘난 찰리’라고 생각하면서 나간다. 그런 의식을 가져가고 있다. 제 공연에 만족한 적은 없다. 늘 여기는 이렇게 하면 더 찰리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가수란 직업과 배우란 직업을 모두 경험했다. 가수와 배우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A. 그건 확실한 건 같다. 내가 감정이 이래서 이렇게 표현한다는 걸 잘 표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 감정이 1이라면 그대로 표현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아티스트이다. 진짜 아티스트에겐 그게 꼭 필요하다. 잘 하는 사람과 잘 못하는 사람 차이는 표현력이다. 내가 기쁜데 노래로 기쁨을 표현 하지 못하고, 난 안 슬픈데 노래가 되게 슬프게 들린다면 표현을 잘 못한 거다.
Q. 감정 표현의 진심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A. 뮤지컬 배우가 연기를 잘 하고, 노래를 잘 하는 건 기본이다. 그건 논하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잘 한 상태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이야기한 거다. 물론 정답은 없다. 다만 표현의 차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인 것 같다. 이 사람이 가짜로 노래하는지, 진짜로 노래하는지, 가짜인데 진짜인 척을 하는지는 많이들 알 수 있지 않나. 모를 수도 있지만,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Q. 석훈씨 공연을 관람했다. 첫 데뷔하는 배우들에게서 보이는 ‘떨림’ 이런 게 없었다.
A. 사실 저 빼고 아무도 긴장 안하는 것 같던데요. 늘 떨리고 긴장되는 건 사실이다. 4월 1일이 막공인데 그 날이 제 공연 날이다. 마지막 공연까지 긴장 할 것 같다. 마지막 공연 끝나고 맘껏 소리 한번 지를까 싶다. 찰리가 어수룩하고 긴장하는 캐릭터라 그나마 괜찮다. 베테랑 배우인 정성화씨도 공연 전에 떤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매번 ‘오늘은 이렇게 해보자. 오늘은 여기 2개만 가져가보자’ 란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걸 알려주신다. 너무 좋다. 언제 뮤지컬 베테랑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겠나.
Q. 어떤 장면을 좋아하나.
A. 1막 마지막 롤라와 엔젤들이 부르는 ‘함께 외쳐 봐 ‘Everybody Say Yeah’(에브리 바다 세이 예)’란 중독적 넘버가 나오는 장면이다. 맘껏 부르는 게 너무 신나고, ‘이렇게 신나기 때문에 구두를 만들 수 있을거야’ 란 마음을 잘 표현 할 수 있어서 좋다. 실제로 하이힐 부츠를 신어보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 당당히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말 그대로였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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