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이윤택, 배우 오달수·최일화·최용민·조재현 등의 성폭행 파문으로 충격에 휩싸였던 공연계가 차츰 폭력 근절과 재발 방지를 위한 기틀 마련으로 미투운동의 미래지향적인 활로 모색에 고삐를 조이고 있다.
정부와 공연계 국공립단체는 정확한 실태 파악을 하는 동시에 재발 방지 대책에 분주한 모습이다. 문체부는 지난달 28일 발족한 성평등문화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대책 마련 및 지원 관리에 나선다. 이를 위해 산하 공연예술기관에 성폭력 근절 대책 마련 지침과 실천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하고 하반기 정부 지원·공모 사업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현재 국립극장, 국립극단, 정동극장 등 주요 기관들은 성폭력 관련 조항 보완을 위해 법률자문을 진행 중이다. 특히 국립극장 등 국공립 공연예술기관에 인사를 임명할 때 성추문 등에 대해서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윤택 전 감독의 성폭력을 가장 먼저 폭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지적대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셈이다.
민간극장들 역시 적극적인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유명 연극배우 이명행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던 두산아트센터의 경우 사건 발생을 계기로 민간극장 가운데선 가장 발 빠르게 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한 케이스다. 두산아트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모든 공연 개막에 앞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했고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피드백·보완 작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며 “계약서 상의 차별금지의무조항이나 구체적인 내규와 행동매뉴얼 등을 마련해 배우와 스태프는 물론 제작극장의 전 임직원이 관련 조항을 공동의 의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인지 교육 의무화 및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해 민간 제작극장의 협력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관계자는 “아직 협의체 단계는 아니지만 제작극장의 실무자들이 모여 성폭력 근절 대책의 제도화를 논의하고 있다”며 “제작극장들이 공론의 장을 여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가해자들의 공연을 보이콧하고 그간 만연한 폭력적인 문화 개선을 촉구하고 있는 관객들의 적극적인 움직임 역시 긍정적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는 관객들이 주축이 되어 공연계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성폭력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공연 마니아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연뮤갤 역시 관객들이 성폭력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김태희 연극평론가는 “최근 관객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성폭력에 둔감했고 이를 묵인해준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처벌의 의미”라며 “단순히 연극계 전체가 타락했다는 손가락질이 아니라 우리 공연계가 자정하고 건강한 예술계로 거듭나면 여전히 우리를 지지해주겠다는 채찍질이라는 점에서 우리 관객들은 큰 힘이 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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