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위기경영을 하고 있는데 배가 부르나, 직원들끼리 감정싸움이나 하고….”
STX㈜의 전 법무팀 직원 A씨가 전한 서모 STX㈜ 대표이사의 2016년 당시 발언이다. A씨는 2015년 입사 이후 상사의 계속된 성희롱에 시달리다 사표를 썼다. 회사는 피해를 보고한 A씨를 업무에서 배제했고 노동청의 가해자 징계 명령에도 응하지 않았다. 서 대표를 비롯한 간부들은 성희롱을 개인 간 감정싸움으로 치부했다. “회사 반응은 ‘외부에서 여자가 잘못 들어와 회사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었다”고 A씨는 토로했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자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대기업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A씨와 정의당 당직자에게 성희롱과 데이트폭력을 당했다고 밝힌 B씨, 명동성당 가톨릭합창단 지휘자의 성희롱 언행을 고발했다가 2차 피해를 겪었다는 C씨를 5일 만났다. 이들은 “대기업이든 진보정당이든 종교단체든 성폭력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를 문제 삼은 건 똑같았다”며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2차 피해는 사회 전반의 고질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B씨는 정의당이 당직자의 2차 가해 사실을 알고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의당 여성주의자모임 대표는 “(가해자인) 권모 전국위원이 (B씨에게) 코가 꿰인 것 같다. 그의 정치생명이 우려된다”거나 “피해자는 정서가 불안한 사람”이라고 발언하며 성폭력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B씨는 “지난해 9월 정의당에 성희롱 피해를 알리고 성폭력 대응 메뉴얼과 당 차원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올해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미투 운동에 불이 붙고 나서야 성명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지난 달 8일 B씨 피해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성폭력 대응 매뉴얼 작성을 약속했다.
C씨는 2016년 10월 명동성당 합창단 연습 도중 “술집에 나가는 여자들이 목소리가 더 예쁘고 고상하다”고 말한 지휘자 이모씨에게 사과를 요구했다가 합창단에서 쫓겨났다. 지휘자는 사과를 거부했으며 별다른 조치 없이 유임됐다. B씨는 “당시 지도신부는 성희롱 발언보다 언론과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알린 사실을 더 문제 삼았다”며 “‘공동체와 사랑의 가치’를 해친다면서 합창단을 떠나라고 종용했다”고 전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이들은 2차 피해가 더 괴롭다고 지적했다. 조직이 가해자를 감싸면서 피해자를 ‘개인 대 집단’의 힘든 싸움으로 몰아넣는다는 얘기다. A씨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조직 안에서 상처를 보상받고 남길 원하지만 조직은 이들을 따돌리고 배제하면서 기어이 소송이나 폭로의 장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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