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사실상 ‘승자’가 된 오성운동은 창당 9년 만에 최대 정당이 되는 새 역사를 썼다. 신랄한 풍자로 유명한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와 컴퓨터공학자인 고(故) 잔로베르토 카살레조가 기성 정치권의 부패 척결과 투명성, 인터넷을 통한 직접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지난 2009년 공동 발족시킨 변방의 시민운동이 불과 9년 만에 중앙정치 무대의 주연으로 우뚝 선 것이다.
창당 10년도 안 된 신생 정당이 수십년 역사의 기성 정당들을 제치고 최대 정당이 된 것은 이탈리아 정치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성운동은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 소득 도입을 공약하고 환경을 중시하는 등 좌파적 색채를 띤 동시에 폐쇄적인 이민정책과 이탈리아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등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 범주로 나누기 어려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오성운동은 첫 총선 데뷔전인 2013년부터 파란을 일으켰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심판 여론에 힘입어 애초 예상보다 10%포인트 높은 25%를 득표해 집권 민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후 2016년 6월 지방선거에서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을 공약하며 수도 로마와 제4의 도시 토리노 시장을 거머쥐며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고 이를 계기로 집권을 향한 대망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다만 대안제시 없이 기성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해 유권자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데 골몰하고 구체성이 결여된 공약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반체제 포퓰리스트 정당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붙는다.
오성운동의 극우적 색채를 지우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는 31세의 루이지 디마이오 대표가 꼽힌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대학을 중퇴한 디마이오 대표는 중앙정치 무대에 등장한 지 불과 4년 만에 최대 정당을 이끄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항상 진한색 양복에 깨끗한 와이셔츠를 받쳐 입는 말쑥한 옷차림을 고집하며 뛰어난 언변과 호감형 외모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마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는 총선을 앞두고 공개한 국정운영 프로그램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당의 오랜 방침을 삭제해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반유럽연합(EU) 세력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며 성공을 거뒀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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