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중국에서 열리고 있다. 여기에서 국가주석 등의 지도부를 구성하고 국가기구를 개편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주목을 끈 것은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연임 규정을 폐지하는 개헌안이었다. 그동안 중국은 정치적 민주화 없는 정치적 제도화로 정치개혁을 추진해왔고 정치 과정의 불투명성에도 지도자 선출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왔다. 실제로 잠정 규칙(潛規則)이라는 관례가 작동하면서 ‘10년 임기제’가 자리 잡았고 파워 엘리트 선발 과정에 업적주의(meritocracy)가 작동하면서 매몰 비용을 줄이기도 했다.
중국 정치에서 지도자 임기 규정에 민감한 것은 무엇보다 문화대혁명 시기 개인 숭배와 권력 집중이 가져온 역사적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고 당과 정부의 분리라는 중국 정치개혁의 숙원에 비춰보면 이러한 ‘일극(一極)’의 부활은 정치 발전의 후퇴다. ‘인민영수’라는 표현이 여과 없이 사용되는 상태에서의 연임제 폐지에서 마오쩌둥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구나 통상 가을에 열리는 당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를 지난 2월 긴급하게 소집해 개헌안을 마련한 것은 이례적일 뿐 아니라 지도부의 초조함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개혁개방의 세례를 받고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한 중국 지식인들은 무술 ‘변법’을 패러디하고 1980년 ‘당과 지도체제의 개혁’에서 권력 집중의 폐해와 종신제 문제를 지적한 덩샤오핑을 호명하는 방식으로 반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검열을 강화하는 한편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서는 “당과 군에는 연임제한 규정이 없는데 국가 영역에만 이를 두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해명했다. 즉 당과 군 그리고 정부 지도자 임기 규정의 불일치를 통일하려는 것일 뿐 연임 규정을 바꿔 종신제의 길을 닦고 있다는 주장은 과도한 일반화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문제는 이러한 비판과 갈등을 무릅쓰고 중국이 왜 이러한 길을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오는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초를 건설하고 중국 통일의 대업이라는 초석을 놓기 위해서는 국내외적 난관을 과감하게 돌파하는 지속 가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새로운 권력에 힘이 쏠리는 레임덕 현상을 방지하겠다는 현실정치의 포석도 깔려 있다. 제19차 당대회 인선에서 차세대 지도자를 권력 핵심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포진시키지 않은 것도 이러한 고려였다. 또 오랫동안 연구한 싱가포르의 권력체제가 정치적 상상력을 열어준 측면도 있다. 이렇게 보면 새로운 시진핑 체제는 부상한 중국의 힘을 바탕으로 단순한 위기관리 정부가 아니라 ‘중국정신’ ‘중국지혜’ ‘중국방안’ ‘중국가치’로 제도경쟁·담론경쟁·체제경쟁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중국의 역주행을 가능하게 한 데는 역설적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난맥상도 한몫했다. 그동안 중국은 미중 정상회담으로 미국이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묶어뒀고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오직 지지자들에게 호소할 뿐 보편적 민주주의나 자유무역과 개방을 축으로 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데도 별반 관심이 없었다. 미국의 거친 무역통상정책과 동맹국의 반발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개헌은 이러한 규범 공백의 공간을 파고들었고 서구 국가조차 미국발 불확실성에 더해 중국 정치에 대한 공세가 중국발 세계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것을 우려해 관망 모드로 전환했다.
강한 리더십은 강한 중국을 추구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환기 역사적 과제를 정당성과 결부하면서 당내 민주주의나 숙의형 타협보다 대중정치의 유혹에 쉽게 빠질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리더십은 북핵 문제 등에서 중장기적 정책 일관성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보편적 이념과 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가 커지면서 한국의 대중 인식에도 부정적 변화를 가져와 한중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하는 데는 제약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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