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현장에 주변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두 사람이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으로 분장한 관람객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한 컷에 담긴 사진은 외신을 통해 전세계로 타전되기도 했다. 그 만큼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나란히, 그것도 다정하게 등장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마’ 했던 만남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급격히 커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9일 우리 정부를 통해 백악관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응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 누구도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국가 대 국가의 무력 전쟁 위협은 물론 서로 인신공격까지 해대며 날을 세웠던 두 사람이었다. 지난 해 9월 유엔총회 즈음에는 두 사람의 갈등이 전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하기도 했다. 유엔총회 연단에 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면서 “북한을 완전 파괴해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유엔총회 연설에서 특정 국가나 지도자를 직접적인 비난을 하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이에 북한도 지지 않았다. 리용호 북한 외무성이 같은 연단에 올라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개 짖는 소리”라고 대신 비난했다. 이걸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한 번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Dotard)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 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에게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위협했다. 당시 국제사회는 두 사람의 인신공격 발언이 실제 충돌로 이어질까봐 짐짓 우려하기도 했다. 또 이후 ‘로켓맨’과 ‘늙다리 미치광이’는 두 사람을 희화화하는 별명으로 굳어져 버렸다.
두 사람은 ‘핵 단추’를 두고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내 책상 위에는 항상 핵 단추가 있다”고 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트위터를 통해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단추가 있다”고 응수했다. 역시 적절치 않은 말싸움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밖에도 실제 충돌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는 두 사람의 말싸움 사례는 많다.
그런 전례가 있는 두 사람이기에 실제 한 자리에 서게 된다면 ‘세기의 만남’으로 불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정전 후 처음 있는 일이 된다. 물론 중요한 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앞서 대북특사단의 방북 과정에서 확정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실제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과 북한은 물론 미국, 더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변 모든 국가들이 정세 안정을 위해 사전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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