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신의 철학과 신념을 당신의 논리와 언어로 풀어서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들이 일궈낸 민주 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대통령 역시 두 선배 지도자의 자질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전·현직 대통령 3인을 ‘말’과 ‘글’로 보좌한 필사들이 지난 8일 저녁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 모였다. 이날 열린 북 콘서트는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저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 출간을 기념해 ‘대통령의 글쟁이들’이라는 특별한 콘셉트로 마련됐다. 양 전 비서관을 비롯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한 강원국 전 청와대 비서관,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의 홍보를 총괄한 정철 카피라이터 등은 400여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 자신의 기억 속에 담긴 대통령의 모습을 진솔하면서도 유쾌하게 들려줬다.
우선 정철 카피라이터는 지난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한 문 대통령이 직접 저서의 추천사를 써준 일화를 소개했다. “그 당시 ‘문재인 후보’는 유권자의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볼 만큼 미숙한 정치 신인이었어요. 저의 저서에 들어가는 추천사를 써주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며칠 동안 아무 연락이 없길래 ‘워낙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힘든가 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설 연휴가 지나고 갑자기 제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육필로 쓴 추천사를 건네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눌한 말투로 ‘저 그 책 다 읽었어요’라고 딱 한마디 하는데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죠.” 이에 양 전 비서관은 “보통 정치인들은 자잘한 추천사는 비서한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문 대통령의 추천사를 보면 글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수많은 독서와 사색의 경험, 절제하는 품성이 문 대통령의 글에 그대로 배어 있다”고 추어올렸다.
이날 모인 패널들은 각자 모신 대통령은 감싸고 상대 지도자는 흠을 들추느라 티격태격하면서 청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강 전 비서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지도자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 발짝 앞서 가면서 왕이나 다름없는 국민에게 진언을 드리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하자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집필한 김택근 작가가 발끈하고 나섰다. 김 작가는 “노 전 대통령은 본인 말씀만 하고 빨리 가버리는 스타일이었지 않느냐”며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이 ‘제발 반 발짝만 앞서 가라’고 사정했던 것”이라고 농을 쳤다.
이날 행사에는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는 별칭을 가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특별 게스트로 참석해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항상 ‘연설이든 글이든 말하고 쓰는 사람의 혼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하셨다”며 “노 전 대통령은 역시 연설의 전달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김대중·노무현을 용광로에 넣고 휘저어 딱 장점만 뽑아낸 사람이 문 대통령이 아닌가 한다”고 말해 객석의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통령의 어록이나 글을 꼽아달라고 하자 강 전 비서관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노 전 대통령의 유서 이야기를 꺼냈다. 강 전 비서관은 “유서 내용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이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는 딱 한 줄로 자신의 상황과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며 “말과 글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그분은 생의 마지막 순간 ‘책과 글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깊게 생각하셨던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의 끝 부분을 거론했다. 그는 “그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당신(노 전 대통령)은 그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나는 그 운명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는 문장은 문재인이라는 한 인간의 당시 처지를 관통하는 표현이었다”고 회고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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