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소방서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9일 오전 1시 55분께 장모(43)씨가 ‘보물 1호’ 서울 종로구 흥인지문의 2m 높이 담장을 넘어 1층 협문 앞에 종이상자를 쌓은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 시각 야간근무자 보초 2명·내근자 1명 총 3명이 근무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행인이 장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기 전까지 장씨의 침입 사실을 몰랐다. 흥인지문에는 소화기 21대·옥외소화전 1대·자동화재탐지설비·폐쇄회로(CC)TV 12대 등이 설치돼 있다. 자동화재탐지설비는 방화 당시 열 온도가 충분히 높지 않아 작동하지 않았다.
이들이 장씨의 침입사실을 몰랐던 이유는 흥인지문 내에 자동 침입 감지센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화재보호법 제14조에 따르면 침입 감지센서는 소화기·소화전 등 소방설비와 달리 의무 설치사항이 아니다. 이 때문에 장씨도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관할구역에 문화재를 둔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문화재청에 신청해 설치하는데, 예산을 따로 받아야 해 사실상 설치를 않고 있다. 현재 숭례문과 숙정문도 자동 침입 감지 센서가 없어 자체 인력만으로 감시 중이다.
흥인지문 관리사무소 내 CCTV는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기능도 없었다. 흥인지문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화재 당시 야간근무자 2명은 외부 보초를, 1명은 내근을 하며 CCTV를 상시 확인했다. 그러나 내근자 1명이 혼자 CCTV 12대를 전부 확인하려면 6분 가까이 걸려, 1분 새 담장 뛰어넘은 장씨를 확인하지 못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CCTV에 사람이 움직이면 이를 크게 확대해주는 기능을 따로 설치할 수 있지만 의무가 아니라서 하진 않았다”며 “이번 화재 후 문화재청장의 특별 지시로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육안으로 침입자를 다 잡아내기 어렵다는 점은 알고 있다”며 “사물인터넷(IoT)기술을 활용해 보안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로 서울 각 지자체는 화재 및 문화재 관리가 부실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본지 취재 결과 2008년 화재가 발생했던 숭례문도 자동 침입 센서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본지가 9일 숭례문을 방문해 보니 지난 2008년 화재 후 야간대비인력은 5명으로 늘었지만 침입자를 막을 센서는 없는 상태였다. 5인 1조로 야간근무를 하지만 내근자 1명이 CCTV 21대를 전부 봐야 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숭례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움직임이 있으면 CCTV에서 알아서 그 장면을 강조해 주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숙정문은 아예 문화재 내부를 비추는 별도의 CCTV가 없다. 한양도성 내부에 있는 숙정문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사지역이지만 일반인도 신원을 조회하면 들어갈 수 있다. 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는 “이 지역 CCTV는 전부 청와대 보안 목적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숙정문만 비추는 CCTV는 없다”며 “숙정문 외부를 360도 비추는 CCTV는 부대원이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화기는 7대 있지만 자동 침입센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다은·유민호·고현정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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