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의 톤도 바뀌었다. 핵·미사일 도발과 지난 8일 평양을 방문한 뒤 대북특사단의 언론발표문에 담겼던 북한의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전제조건은 사라지고 대신 ‘향후 어떤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는 내용이 그 자리를 채웠다. ‘트럼프를 만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도 정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소개됐다. 트럼프의 트윗처럼 ‘큰 진전(great progress)’이 있었던 것은 명확해 보인다. 평양과 서울·워싱턴을 오간 숨 가쁜 비핵화 셔틀 외교의 성과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이르다.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확정된 것은 북미 정상회담을 갖자는 김 위원장의 제안과 트럼프 대통령의 화답뿐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방법부터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의 수단까지 어느 것 하나 정해진 게 없다.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에서 답을 못 찾으면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북의 진정성이다. 북한은 2005년 9·19합의를 통해 핵 포기와 핵확산금지조약·국제원자력기구 복귀를 공약했지만 1년 만에 핵실험을 하는 등 수차례 약속 파기를 한 흑역사의 주인공이다. 북한의 대화 공세가 대북제재에 따른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시간 끌기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여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다. 모처럼 찾아온 한반도 긴장 완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북한이 비핵화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일 때까지 최고의 압박과 제재는 한순간도 멈춰서는 안 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