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판사들은 희끗희끗한 새치가 생겨도 염색을 하지 않는다. 소송 당사자들이 “연륜이 없어 보인다”며 젊은 판사를 꺼리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다. 하지만 판사들의 평균 나이가 50세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오는 2030년께면 이처럼 ‘나이 들어 보이려는 판사’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판사 고령화의 문제는 재판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최근 법관 사회는 점점 빠르게 나이 드는 모양새다. 12일 대법원에 따르면 전국 법관 평균 연령은 지난 2012년 39.2세였지만 2015년 40.4세로 올라갔다. 2016년에는 41.4세, 지난해는 42.6세로 판사들의 평균 나이는 매년 약 1세씩 높아지고 있다. 공식 자료가 아닌 법원 실무자들의 내부 전망치 중에는 2030년 법관 평균 연령을 50세 이상으로 추정한 자료도 있다. 법원 관계자는 “각종 통계를 따져보면 아무리 늦어도 2030년이면 법관 평균 연령이 50세를 넘길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판사들이 점점 나이 드는 이유는 사법개혁의 일환인 법조일원화 정책 때문이다. 법조일원화는 일정 경력의 변호사 자격자 중 법관을 선발하는 제도다. 20대에서 30대 초반 나이로 사법시험을 합격한 젊은 판사들이 폐쇄적인 사법부 조직을 만들고 현실과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린다는 비판이 일자 2006년부터 실시됐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2021년까지는 법조경력이 5년을 넘어야 판사로 신규 임용될 수 있다. 2022~2025년 임용자는 법조경력 7년 이상, 법조일원화가 완성되는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의 법조경력이 있어야 한다.
로펌 등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판사들이 변호사 개업을 늦추는 것도 법관 사회가 나이 들어가는 요인으로 꼽힌다. 전관 출신 변호사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심해지고 관행처럼 내려오던 ‘예우’도 크게 줄어드는 분위기다. 여기에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판사 출신 변호사라 해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실제 지방법원에서는 인사 적체가 심각해 합의재판부 배석판사로 10년 이상 근무하는 판사도 많아졌다. 대개 판사들은 임용 뒤 배석판사로 8~9년 경력을 쌓으면 단독으로 재판을 맡는다.
이런 가운데 재판 시스템 개선은 더디게 이뤄지며 법조일원화 정책의 역효과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무리 연륜 있는 판사라도 수만 쪽의 기록을 읽고 법률 문서를 찾는 실무 역량은 나이가 들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이 때문에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일선 판사를 도와 재판 실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원(로클러크) 증원에 몰두해왔지만 정치권의 반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대하는 의원들과 힘든 협상 끝에 지난달 개정된 법률은 200명인 재판연구원 정원을 300명으로 늘리는 데 그쳤다. 법원행정처의 목표는 재판연구원 정원 제한을 아예 없애는 것이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약 3,000명인 전국 법관 1명당 재판 연구원 1명씩은 둬야 재판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판사 수 자체를 큰 폭으로 늘려 업무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4년 개정된 법률에 따른 국내 각급 법원 판사 정원은 2019년 기준 3,214명으로 못 박혀 있다. 현재 국내 일선 판사 숫자는 2,970여명으로 판사 1인당 인구가 약 1만7,000명(총인구 5,000만명 기준) 꼴이다. 반면 독일은 인구 8,000만여명에 판사 약 2만명으로 판사 1인당 인구가 4,0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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