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나고 또다시 농사철이 다가오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청계산 자락에 있는 조그만 텃밭을 직접 일궈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는 하기 어렵고 농사에 대한 지식도 없어 매형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
은퇴하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개 많은 이들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을까 한다’고 쉽게 말한다. 매우 무모한 생각이다. 농사가 전원주택에 살면서 화초 몇 포기 가꾸는 것으로 여기고 답한다면 큰 오산이다.
1년 농사를 지으려면 어떤 작물이든지 적당히 물을 주고 햇볕과 땅으로부터 필요한 영양을 공급받게 해야 한다. 때로는 비료도 주고 소독도 하며 온갖 정성을 들여야 수확이 가능하다. 이 모든 과정이 농부의 땀방울이 응집된 결과일 것이다.
지난해 봄에는 텃밭에 상추·방울토마토·가지·오이·고추 등을 조금씩 심어 싱싱한 야채를 식탁에 올릴 수 있었다. 종종 지인들이 청계산에 등산오면 텃밭에 들러서 상추를 뜯고 직접 심은 고추와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는 여유로움도 많이 누렸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필히 ‘풀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대부분 잡초인 풀들은 별다른 용도도 없는데 번식력이 왕성해 재배 중인 작물의 영양소를 빼앗는다. 풀잎이나 줄기가 농작물을 뒤덮어 성장은 물론 생존까지 방해하기 일쑤다. 이 같은 경우를 막기 위해 농약을 사용해 제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무리 효과가 우수하고 작물에는 해가 적은 제초제라 하더라도 잘못 사용하면 외려 작물에 해가 되고 인체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제초제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필자는 제초제 등 소독약을 사용하지 않고 쉬는 날에는 호미를 들고 손으로 풀을 제거하는데 쪼그리고 앉아 허리를 굽히고 풀을 뽑으면 일어날 때 허리가 안 펴지고 온몸이 쑤시는 등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뽑는다고 끝은 아니다. 풀들은 왜 이리 빨리 자라는지 풀을 뽑고 집에 가려 뒤돌아서면 풀이 “언제 다시 오세요? 내일 또 오실 거지요”라고 묻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얼마나 빨리 왕성하게 자라면 이런 말이 나올까.
풀과 함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게 또 있는데 바로 채소 벌레들이다. 특히 배추 속의 청벌레는 속에 들어 있어 잡기가 매우 어렵다. 아침 일찍 배추 속을 열고 나무젓가락으로 잡아 페트병에 넣어 없애버려야 하는데 매일 출근 전에 텃밭에 다녀오는 반복되는 일을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가을에는 김장배추 100여포기를 심었으나 모두 배추 청벌레에게 헌납하고 결국 근처 마트에서 배추를 사 김장을 담글 수밖에 없었다.
땀 흘린 자만이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했다. 은퇴 후 한적한 전원생활의 낭만으로 농사일을 시작한다면 오산이다. 내 앞에 놓이는 과실 하나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골에서 땀 흘려 농산물을 공급해주는 농부의 노고가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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