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칼럼]나라를 망친 제승방략(制勝方略)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제승방략은 임진왜란 때 조선군의 전략이다. 제목을 풀이하면 ‘승리를 만드는 포괄적 전략’이고, 사전적 설명에 의하면 ‘적의 침입 시 각 지방의 군사를 요충지에 집결시킨 다음 중앙에서 파견된 장수의 통솔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제승방략은 실제 전쟁에서 조선군을 망치고도 부족해 국제적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제승방략은 전략이라기보다는 현장을 외면하고 국난의 즉각 대처를 막는 권력의 통제였다. 전선의 군사들에게 싸움을 못하게 하고, 후퇴를 부추겼다. 실례를 보자. 왜군의 침공 후 처음 이뤄진 대규모 공방전은 동래성전투였다. 그런데 조선군은 동래에서 총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후방의 지원없는 승전의 기대는 상식 밖이다. 동래성전투가 그랬다. 후방의 지원은커녕 동래성에 주둔한 중앙(병조)의 군사들마저 중앙에서 지정한 집결지로 이동하느라 전선을 이탈했다. 제승방략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동래성에서는 정규군이 빠진 채 지방관아 소속 수백의 군사들이 백성들과 함께 15만 일본군과 맞서야 했다. 후퇴하는 중앙군은 남은 아군과 백성의 사기를 죽였고, 후방의 지원은 기대도 못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일치단결해 적을 감동 시킬 만큼 처절하게 싸웠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그 후에도 제승방략의 폐해는 개선되지 않았다. 왜군침공 며칠 후 조선 조정은 이일을 경상도순변사로 임명하고, 새재의 지형을 이용한 방어를 명했다. 그런데 그는 지휘부를 구성할 병사를 모은다며 3일을 허비한 후 60명의 병사를 이끌고 상주의 경상감영에 이르지만 지방지휘관인 상주목사가 중앙의 장수를 기다리다 지쳐 틀렸다 싶어 도주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군사를 지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포자기에 이른 이일은 “왜군이 새재로 몰려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백성 다섯의 머리를 도리깨로 깨서 죽여 입을 막은 후 새재방어선을 포기하고, 제승방략에 따라 삼도순변사로 갓 임명된 신립이 도착했다는 충주로 달아났다.



당시 신립의 막하 군졸인 김여물은 새재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한 매복과 유격전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일은 “매복전을 펴면 억지로 동원돼 애착이 없는 병사들이 전부 도망을 칠 것”이라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자 신립은 장수의 말을 무시하고 군졸의 의견을 따랐다가는 뒷감당이 어렵다는 생각에 후퇴가 불가능한 배수진으로 전투를 결정했다. 그 결과 창검을 든 3만여 조선군은 10만여 일본군의 집단총격을 받아 탄금대의 강물을 온통 피로 물들였다. 그 와중에 이일은 “왕을 모서야 한다”는 핑계로 전선을 빠져나와 한양에 온 뒤 일본군의 전투력을 과장하면서 왕에게 한시 바삐 북으로 피신하라고 일렀다.

한양방어전도 마찬가지였다. 도원수 김명원은 왜군이 몰려오자 싸우지도 않고 왕의 어가를 지킨다는 핑계로 임진강으로 물러나 방어선을 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명령에 즉시 복종 않고 매복을 했다가 적 선발대 70여명의 목을 벤 부원수 신각을 항명으로 단죄했다. 이로 인해 육전 최초의 승리를 기록한 장수는 영문도 모르고 참형을 당했다. 역사는 공직자로 하여금 백성이나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오직 위만 바라보게 만드는 이기적인 권력의 통제야말로 백성을 해치고 나라를 망치는 가장 큰 원흉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의 부당한 통제가 지금도 우리사회에 난무하다는 사실도 알게 해 준다.

연평해전의 예를 보자. 제1차 연평해전 때 중앙의 명령 없이는 사격을 못하는 교전수칙에 따라 해군장병들은 NLL을 넘어 침입한 북한함정을 선체로 들이받아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한번으로 족했다. 또다시 영해를 침범한 북한함정을 밀어내려 돌진하다가 약이 빠짝 오른 북한군의 선제사격을 받는 바람에 꽃다운 장병들이 희생됐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공직자들이 재난을 맞아 중앙의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위급한 현장상황에 전념했더라면, 온 국민을 무기력과 비통함에 빠지게 한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알고, 역사로부터 끊임없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