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향기에 취해서 입구 지나면
불교전문전시관 ‘선 미술관’ 있어
이응노 화백 작품 10여점 등 전시
산에 들에 꽃 피는 봄이다. 아직 서울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지만 아랫동네에는 어느새 따스한 온기가 내려앉았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겨울의 추위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낀다. 어쩌면 여행의 묘미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계절이 바뀌는 이 찰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엊그제 둘러보고 온 충남 예산군 덕산면도 싱그러운 봄 향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1시간30분 만에 터미널에 도착한 뒤 곧바로 향한 곳은 덕숭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수덕사. 이 절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백제 위덕왕(554~597년)의 재위 기간에 지어졌다는 것이 학계들의 정설이다. 총 12개의 백제 사찰 가운데 오늘날까지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절은 수덕사가 유일하다.
각종 토산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가를 지나 표를 끊고 입구로 들어선 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왼편에 미술관이 보였다. 지난 2010년 10월 개관한 이 ‘선(禪) 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전문 전시관이다. 선 미술관은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인 고암 이응노(1904∼1989년) 화백의 작품 10여점과 달마도를 비롯한 원담 스님의 작품 4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3,000원의 입장료(성인 기준)를 내고 수덕사에 들어왔다면 미술관은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옆에는 수덕여관이
근대사 대표 신여성 일엽스님·나혜석
낡은 시대 한탄하며 예술적 교감 나눠
미술관 바로 옆에는 1,054㎡의 터에 ‘ㄷ자’ 형태로 지은 초가집인 수덕여관이 보인다. 이 여관에 얽힌 스토리는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페미니즘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 근대사의 대표적인 신여성이었던 일엽 스님(1896~1971년)과 나혜석(1896~1946년)이 함께 머물며 가부장제에 얽매인 낡은 시대를 한탄하고 예술적 교감을 나눴던 곳이 바로 수덕여관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나혜석은 1937년, 동갑내기 친구였던 일엽을 만나러 수덕사로 향한다. 자유연애를 인생의 신조로 삼고 연애와 동거·결혼·이혼 등 수많은 사랑의 곡절을 거친 일엽은 4년 전인 1933년 수덕사로 출가한 터였다. 나혜석 역시 친구의 길을 따라 수덕사의 만공 스님에게 출가를 요청했다. 비록 나혜석은 스님으로부터 “중이 될 재목이 못 된다”며 거절을 당했지만 그는 5년 동안 수덕사에서 머물며 그림을 그렸고 절을 찾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유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바로 이응노 화백이다. 이응노는 선배 화가였던 나혜석으로부터 독창적인 예술 세계와 세상을 바라보는 깨인 시선을 함께 배웠다. 이후 생(生)의 말년에 나혜석이 수덕여관을 떠나자 이응노는 1945년 아예 이 여관을 매입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수덕여관의 현판도 이응노의 작품이며 예산군은 2009년 4억원을 들여 종전 건물을 해체하고 방 7개, 툇마루·온돌 등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했다.
수덕여관을 나와 한참 걸어 들어가면 1308년 고려 충렬왕 때 세워진 대웅전이 나온다.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목조건축물로 꼽힌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에 기둥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 구조’를 하고 있다. 고려 시대 건축이지만 백제의 미감도 잘 녹아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대웅전 바로 앞마당에는 통일신라 시대 양식의 삼층석탑이 적당한 높이로 보기 좋게 솟아 있다.
덕산온천도 이 지역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다. 수덕사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덕산온천의 온천수는 게르마늄 성분이 함유된 45도 이상의 천연 중탄산 나트륨 온천수다. 온천지구 내에 온천장 9개소와 관광호텔·일반호텔 등 50여개의 숙박업소가 있다. 숙박업소 대부분이 온천탕을 이용하고 있다.
■여행 중간 피로하고 허기진다면
수덕사서 차로 10분 덕산온천에 풍덩
‘수덕골 미륵’서 산채 비빔밥 맛보기를
여행 중간중간 허기를 든든히 메워줄 먹거리도 물론 즐비하다. 수덕사 인근의 ‘수덕골 미락’에는 신선한 재료가 입맛을 돋우는 산채 비빔밥이 있다. 비빔밥 정식을 주문하면 메밀전과 더덕 무침, 도토리묵 등의 반찬을 곁들여 된장에 밥을 비벼 먹을 수 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42-1.
육류를 맛보고 싶다면 고덕갈비를 추천한다. 한우만 팔기 때문에 가격이 그리 저렴하지는 않지만 달짝지근한 양념갈비는 육질이 매우 부드럽고 시원한 냉면 맛도 일품이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387.
/글·사진(충남 예산)=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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