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난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바람이 불면 주변 들판에서는 우거진 수풀들이 빚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밖으로는 멀리 북한산의 전경이 펼쳐진다.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의 한옥 ‘낙락헌(樂樂軒)’에서 보내는 일상의 일부다.
‘즐겁고 즐거운 집’이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낙락헌은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생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주거공간이다. 들판 옆 곡선으로 구부러진 길을 따라 감싸고 있는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모습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기와지붕이 씌워진 전형적인 한옥이다.
낙락헌의 건축주가 설계자에게 요구한 것은 편리한 한옥, 북한산 조망 두 가지였다고 한다. 이전에 한옥 거주 경험은 없었지만 한옥 생활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주차 공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등의 문제로 아파트보다 불편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가깝게는 커다란 느티나무와 우거진 수풀이 있는 들판이 보이고 멀리는 북한산이 보이는 부지의 장점을 잘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그러한 요구로 이어졌다. 낙락헌을 설계한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건축사 사무소 소장은 전형적인 한옥으로는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주거공간을 구상했다.
낙락헌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다. 담장 끝에 있는 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과 기단을 거쳐 대청마루에 도달한다. 전형적인 한옥의 공간이다. 또 다른 출입구는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아래층에 있다. 한옥을 위로 떠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슬래브를 지나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대식 아파트 공간과 한옥의 공간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낙락헌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전형적인 한옥은 건물이 마당을 감싸는 ‘ㄷ’자 모양의 내향적인 구조다. 그러나 지하1층~지상1층의 건물인 낙락헌은 전형적인 한옥과는 다른 형태의 주거공간이다. 한옥 특유의 기와지붕과 대청마루가 있는 지상1층은 현대식 건축의 필로티 구조가 적용돼 지면보다 높이 띄워져 있다. 내부에는 대청마루가 중심에 있고 풍광이 좋은 남쪽에 주방 및 식당이 배치돼 있는 구조다. 이를 통해 대청마루뿐만 아니라 주방 및 식당, 안방 등 모든 공간에서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외향적인 한옥이 됐다.
지하1층은 현관과 거실, 방, 주차장까지 갖춰진 현대식 구조다. 지상1층과 다르게 담장으로 가려져 있지만 거실과 비슷한 면적의 선큰마당이 거실 앞에 마련돼 있고 마당 반대편에는 별도의 채광창이 설치돼 내부에 빛과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와 함께 한옥에 부족한 다양한 수납공간도 마련돼 한옥의 단점을 보완하는 쾌적하고 아늑한 주거공간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지상과 지하공간은 계단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낙락헌에서 계단은 한옥과 현대적 주거공간을 잇는 중간 영역으로서의 특성이 반영된 공간이다. 계단의 아래층 영역은 장식 없이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연출하지만 상부는 벽돌 벽, 한옥의 도리와 보 등이 있는 전통 한옥의 특징이 반영된 공간으로 조성됐다.
설계뿐만 아니라 자재에도 서양식·현대식 재료가 접목됐다. 한옥의 대표적인 단점으로 꼽혔던 단열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전통 한옥의 습식 벽체 대신 건식 벽체와 진공단열재가 사용됐다. 또한 서양식 목조건축에 활용되는 기밀막으로 방수 기능과 습도 조절 기능도 높였다.
조정구 소장은 “음식을 예로 들면 현대인의 삶은 한식과 일식, 양식 등 다양한 문화가 혼재돼 있는 시대에 속해 있다”며 “낙락헌에는 두 가지 양식이 공존하고 있다기보다는 ‘공존의 양식’이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양식의 조화가 엄연한 하나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의미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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