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박근혜 정부 인사들에게 상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국정원장들이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특활비가 그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는 15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3명의 전직 국정원장이 법정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병기 전 원장은 하늘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왔다. 남재준 전 원장과 이병호 전 원장은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자리에 참석했다. 이병기 전 원장은 공소사실에 대해 “모든 것이 국가 예산 사용에 대한 저의 지식이 모자라서 나온 문제이므로 책임이 있다면 제가 기꺼이 지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렇게 올려드린 돈이 제대로 된 국가 운영을 위해 쓰였다면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기대와 반대로 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심지어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이병호 전 원장은 제도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제가 부패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장이 됐다면 제가 아닌 그분이 아마 이 법정에 섰을 것”이라며 개인 비리가 아니고 오랫동안 존재해 온 제도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이 얼마나 엉터리 나라이면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뇌물을 바치는 나라겠느냐”면서 “저는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답답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재준 전 원장은 변호인의 의견 외에 자신의 입장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국정원으로부터 1억5,000만원의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법정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평생 공무원을 해온 사람으로서 명예롭게 마치고 싶었는데 이 자리에 서니 얼마나 지혜롭지 못했는지 반성한다”고 했다.
세 명의 국정원장 측 변호인들은 모두 청와대에 돈이 전달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지급한 돈이 국정운영에 사용될 것으로 알았다”며 금품거래의 대가성과 고의성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장아람인턴기자 ram1014@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