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더연)’ 직원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추가 고소를 당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법리상 실형을 선고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김지은 전 정무비서와 달리 추가피해자 A씨는 사건 당시 안 전 지사와 명시적 고용관계가 아니어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가 적용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303조는 “업무, 고용 등 기타 관계로 인해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지은 전 정무비서와 달리 안 전 지사와 A씨는 사건 당시 업무상 고용관계가 아니었다. 안 전 지사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더연에서 초대 연구소장을 지냈고, A씨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2015년부터 지난해 1월 사이에는 공식 직책을 맡지 않았다. 정치인인 안 전 지사가 연구소 직원을 명시적으로 보호 또는 감독했다는 사실도 확인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2007년 ‘위력’을 넓게 해석해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勢力)으로 사회·경제·정치적 지위와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정서적 영향력이 실제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는 희귀하다. 최근 1년 간 위력에 의한 간음 및 강제추행 판례를 살펴봐도 유죄로 인정된 재판 8건 중 7건은 실제 업무·고용의 상하관계에서 발생했다. 고용관계가 아니었지만 유죄를 인정받은 경우는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정신장애인·미성년자인 경우로 제한됐다. 법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서적 종속관계는 그 자체로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이를 인정한 판례가 거의 없다”며 “가해자와의 치열한 법정 다툼이 예상되는 만큼 ‘기타’라는 문구를 최대한 넓게 해석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단도 재판부가 ‘위력’을 협소하게 해석할 가능성을 고려해 ‘강제추행’을 죄명에 적시했다. 14일 서울서부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한 A씨 측 법률대리인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강제추행 세 가지 죄명을 모두 고소장에 넣었다”고 밝혔다. 업무상 위력을 입증할 수 없다면 일반 강제추행으로라도 혐의를 적용하려는 포석이다. “둘 사이를 고용관계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오 변호사는 “답하기는 어렵지만 (쟁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두 사건을 병합해 수사한다면 업무상 위력을 입증받을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한 기업 대표에게 20대 여직원 6명을 상습 추행한 혐의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적용했다. 개별 사건별로 성행위의 강제성을 보지 않고 피해자 수로 상습성을 인정한 사례다. 안 전 지사의 경우도 여러 여성과 비슷한 수법으로 성관계를 했다면 업무상 위력을 입증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현재로서는 같이 수사하고 있다”며 “병합 여부는 향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더연 연구원들의 임금을 안 전 지사의 지인인 건물주가 대납해 줬다는 의혹이 이는 만큼 ‘광의의 해석’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건물주가 더연에 월급을 줌으로써 경제적 종속관계가 성립한다면 이로부터 A씨 개인과 건물주, 나아가 A씨와 안 전 지사 사이에도 경제적 종속성을 증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공식적 수사는 성범죄에 한해 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추후에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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