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도 못하고 신랑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 어떻게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무척 두려웠습니다.”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 한국에 동계패럴림픽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안겨준 신의현 선수의 부인으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인 김희선(31)씨는 12년 전인 지난 2006년 신 선수를 처음 만났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베트남 남부 출신으로 한국말이라고는 ‘안녕하세요’밖에 못하는 상태에서 충남 공주시 정안면 인풍이라는 시골로 시집온 것이다.
하지만 신 선수의 금메달 획득 이후 김씨는 베트남에서 시집와 남편을 영웅으로 만들어낸 대한민국 내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김씨는 1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랑이 큰 상처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 큰일을 이뤄줘 감사할 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기뻐해 주고 축하해줘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먼 타국에서의 새로운 삶에 큰 두려움을 가졌던 그는 12년 결혼생활 만에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기쁨을 안았다. 2006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한 뒤 실의와 절망을 넘어 금메달을 목에 건 신 선수 못지않게 김씨는 신랑의 좌절과 절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부인으로서,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희생하고 헌신한 결과 국민들에게 감동적 성공 스토리를 선사했다.
김씨는 “결혼 초기에는 어디 나가는 것도, 누가 오는 것도 무서웠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결혼 두 달 만에 첫 아이가 생기면서 엄마로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더욱이 신 선수는 결혼 초 장애를 비관해 음주에 빠졌고 김씨의 한국 삶은 그야말로 고통의 시간이었다. 말조차 통하지 않으면서 부부싸움을 끊이지 않았다.
다행히 신 선수가 휠체어농구를 시작하고 노르딕스키까지 접하면서 오랜 고통의 시간이 마무리됐고 온 가족은 한마음 한뜻이 됐다. 한국말 실력도 부쩍 늘면서 이제는 한국인 못지않게 우리말을 구사하고 있다. 김씨는 “처음에 가게에서 시부모님을 도와 일하면서 많은 손님을 대하다 보니 한국말을 빨리 배울 수 있었다”며 “활달하고 적극적인 편인 성격도 말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시어머니가 남편의 쾌거를 크게 기뻐하고 있어 자신도 매우 흐뭇하다고 전했다. “아들이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절망하고 있을 때 아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저랑 국제결혼도 시키고 어머니로서의 아픔을 내색하지 않고 의연히 대처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사랑이 신의현 선수의 값진 결실로 이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남편이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며 이번에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는 “외국에서 오랫동안 훈련해야 했고 평창에서 줄곧 훈련하다 보니 집에 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며 “앞을 거의 보지 못하는 시아버지와 가게 일을 도맡아 하시는 시어머니, 딸과 아들, 모두가 가족 사랑을 더욱 다지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딸 은겸(11)과 아들 병철(9)이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며 미소 지었다. “딸과 아들이 둘 다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며 “특히 딸이 아버지를 닮아 열심히 한다”며 아이들을 자랑하는 모습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여느 한국의 어머니와 다름없었다.
5년가량 베트남을 찾지 못했다는 김씨는 “지난해 베트남을 방문할 계획이었는데 남편이 올림픽 끝나고 가자고 미뤄뒀다”며 “가까운 시일 안에 가족이 베트남 친정을 방문할 생각인데 베트남 식구들 또한 크게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고 환하게 웃었다. ‘앞으로 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시부모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고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만 생각한다”며 “남편 또한 다치지 않고 좋아하는 운동을 열심히 했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소박한 답변을 내놓았다. 김씨는 “의현씨가 폐막식 후 함께 집에 오지 못해 좀 서운했다”며 “신랑이 집에 오면 가족들과 함께 못다 푼 승리의 기쁨을 다시 한번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과 같이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는 다른 결혼이주여성에 대해서도 당부를 했다. 김씨는 “외국인 아내들이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한다든지, 이혼하는 뉴스를 간혹 접하게 된다”면서도 “하지만 다문화가정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크게 개선되고 있음을 개인적으로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의 따스한 사랑이 성공적인 다문화가정을 이끈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인터뷰는 공주~천안 구간 국도변에 자리한 조그만 상점인 ‘인풍농산물’에서 이뤄졌다. 김씨는 “시부모님께서 40년 가까이 운영해온 가게인데 시부모님이 평창 응원을 가느라 줄곧 문을 열지 못해 걱정하시는 통에 폐막식도 보지 못하고 지난밤에 달려왔다”며 폐막식을 보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김씨는 “공주 시내를 오가며 한식과 중식 요리사 자격증을 땄는데 이번에 의현씨가 오면 실력 발휘를 해볼 생각”이라며 “지금까지 체중조절 등 때문에 여러 가지 음식을 해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우선 의현씨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부터 끓여야겠다”고 말하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공주=박희윤기자 h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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