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는 공포물로 꼽히는 ‘기담’(2007)을 비롯해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등을 연출하며 한국 호러의 자존심을 지켜온 정범식 감독이 ‘곤지암’으로 또 한 번 출격한다.
‘체험공포’를 표방한 ‘곤지암’은 폐원 후 20년 이상 흐른 지금까지도 폐허로 남아 각종 괴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곤지암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곤지암정신병원은 2012년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소름 끼치는 장소’로 꼽힐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각종 괴담까지 더해져 호러 마니아들 사이에선 공포체험 장소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곳. 정 감독은 이를 모티브로 유튜브 실시간 방송으로 광고 수익을 올리는 1인 크리에이터들의 세계를 조합, 색다른 한국산 공포를 직조해냈다.
극강의 공포를 만들어내는 힘은 철저하게 계산된 카메라 활용과 편집 기법이다. 영화는 병원 건물에서도 가장 많은 원혼이 모여 있다는 402호를 찾은 공포 체험자들이 생중계 도중 실종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스마트폰 세로 화면 사이즈의 프레임을 활용, 관객들은 첫 장면부터 실시간 방송의 시청자로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호러타임즈’라는 이름의 체험단 멤버 7명이 병원 내부로 잠입, 괴담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실시간 생중계한다는 컨셉트에 따라 주연 배우들은 액션캠과 360도 카메라, 드론까지 직접 카메라를 장착·촬영하며 실제 영화에 쓰인 대부분의 장면을 직접 만들어냈다. 배우들의 몸에 장착한 카메라는 표정 변화는 물론 각 인물의 시선을 따라 병원 곳곳을 비춘다. 특히 장면 중간 화면 끊김 현상을 재연하거나 버퍼링을 반복, 관객들이 영화가 아닌 유튜브 생중계로 날 것의 공포체험을 지켜보는 듯 몰입할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심었다.
별다른 효과음이나 배경음악 없이 실제 소리에만 의존한 점, 주된 정서나 드라마 없이 각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 그 자체에만 집중한 점 역시 기존 공포영화의 문법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공포영화에서마저 장면 미학을 완성한다는 평가를 듣는 감독답게 402호 내부 장면은 판타지 속 몽환적인 공간처럼 미장센을 완성한 점도 돋보인다.
19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곤지암’ 시사회에서 정 감독은 “외국 공포 영화는 형식이든, 법칙이든 연구를 많이 하는 반면 한국의 공포영화는 사실주의 베이스에서 벗어나지 못해 관객들이 식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자 배우들이 직접 촬영한 페이크 다큐로 새로운 공포영화의 형식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원초적인 공포 자체를 즐기는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춰 제작된 영화인 만큼 개봉 시기도 개강 시기에 맞췄다. “지난해 4~5월에는 외산 호러물이 좋은 성적을 거둔 만큼 올해는 한국산 공포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게 정 감독의 포부다. 영화는 오는 28일 개봉 예정이지만 실제 병원 건물주가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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