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당국의 발표가 나왔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등의 기술수단을 종합적으로 운용해 거시조정 정책의 예측성과 정확성을 높이겠다는 대목이다. 빅데이터를 통한 거시경제 조정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지만 일각에서는 계획경제론 부활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일찍이 “과거 50~60년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훨씬 좋다고 여겨져 왔지만 미래에는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며 “빅데이터가 시장을 더욱 총명하게 만들고 계획과 예측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고 주장해왔다. 정부의 통제 욕구와 독점기업의 이익 추구가 결합한다면 새로운 경제구조가 탄생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는 이유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이 보급되면서 경제와 사회 전반에 대규모 구조변혁이 진행되고 있다. 정보기술(IT) 발전에 따른 글로벌화가 성장의 엔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기업 간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승자 독식구조가 굳어지면서 부와 권력의 집중현상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이 오히려 혁신의 장애로 떠오르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다. 페이스북이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5,000만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무단 유출해 선거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단적인 예다. 이용자들이 무심코 표시한 ‘좋아요’가 당사자의 정치적 성향은 물론 그들의 행동까지 예측해 정치적 의사 표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신기술이 자유정신을 북돋우기는커녕 사람을 조종하고 남모르는 관심까지 조작할 수 있다는 섬뜩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1인 장기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전제주의 시대로 돌아간 것도 마찬가지다. 흔히 경제가 발전하면 국민의 정치의식이 높아지고 민주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통념을 깨버린 셈이다. 중국은 일당체제를 굳히면서 언론통제와 국민 감시를 한층 강화하고 나서 역사가 거꾸로 흐른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중국 정부는 한발 나가 새로운 독재주의를 서구 민주주의에 대신하는 세계적인 통치모델로 전파할 태세다. 중국이 관영매체를 통합해 ‘중국의 소리’라는 기구를 만들어 시진핑 사상을 전 세계에 전파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 역시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으며 세계 각국과 갈등을 빚고 있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지혜를 가진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방식을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제시했다. 국가를 통치하는 철학자는 지혜를 닦기 위해 어렵고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만 최고의 가치인 선의 이데아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이란 일시적인 감정과 군중심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숫자로 밀어붙이면 우매한 리더가 뽑힐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작금의 스트롱맨들은 기술 변화에 따른 갈등과 혼란을 틈타 상대방을 적으로 내세워 지지기반을 넓히는 공생의 관계를 맺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자신에게 힘을 몰아줘야 한다며 국민감정에 호소하는 위험한 포퓰리즘이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급속한 기술 변화로 인해 기존 경제정책이나 발상으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와 경제구조를 이루려면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발전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디지털 혁명 시대에 맞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공감대를 넓히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역사는 우리에게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정치가들이 내세우는 높은 지지도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한낱 신기루에 불과한 법이다.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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