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에서 덴마크의 통치가 끝난 1042년 웨섹스 왕가의 혈통을 지닌 에드워드가 왕위에 올랐다. ‘데인족(Danes)’의 침략 때문에 노르망디로 망명한 지 20여년 만의 귀환이었다. 즉위 직후 에드워드는 ‘왕이 되면 로마 순례를 하겠다’는 자신의 맹세부터 지키려 했다. 그러나 귀족들의 반대가 완강한데다 정국도 혼란스러워 실행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교황 레오 9세는 그 순례비용으로 수도원을 짓고 빈민을 구제하라고 조언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웨스트민스터사원이다. 정식 명칭은 ‘웨스트민스터 성베드로 참사회성당(Collegiate Church of St. Peter in Westminster)’이다. 이 사원은 그가 죽기 불과 일주일 전인 1066년 1월5일 축성됐고 그는 자연히 여기에 잠들었다. 이후 이곳은 영국 왕의 대관식과 결혼식·장례식 등의 행사가 열리는 곳이자 왕가의 장지(葬地)로 쓰였다.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1세를 비롯한 역대 영국 왕은 물론이고 네빌 체임벌린 등 총리들의 무덤도 있다. 윈스턴 처칠도 당연히 여기에 묻혔어야 할 유공자이지만 그는 유언으로 그것을 사양하고 어렸을 때 다닌 한적한 시골 교회 뜰 옆에 묻혔다.
이곳에는 ‘왕후장상’만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국 역사에 찬란한 빛을 내린 위인들도 많다.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 핵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 등등. 프랑스 작가인 볼테르는 아이작 뉴턴이 이 사원에 묻히는 것을 보고 “영국에서 일개 교수가 위대한 왕처럼 묻히는 일이 벌어졌다”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남쪽에 있는 ‘시인의 코너’다. 여기에는 롱펠로·바이런·스펜서·셰익스피어 등 영문학을 빛낸 문학인들의 묘비나 기념비가 자리 잡고 있다.
올가을이면 지난 14일 세상을 떠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웨스트민스터에 잠든다는 소식이다. 호킹 박사의 장례는 오는 31일 자신이 50년 이상 몸담았던 케임브리지대에서 치러지고 이후 추수감사절에 맞춰 다윈 근처에 유해가 안장된다. ‘우주는 신이 만들지 않았다’는 내용의 책을 쓰기도 한 호킹 박사가 진화론자인 다윈을 만나면 신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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