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경쟁자이자 반드시 꺾어야 할 상대. 그의 이름은 ‘라이벌’. 라틴어에서 시작된 이 단어는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두고 싸우는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을 꺾어야 자신이 영광을 독식할 수 있는 숙적이지만 때로는 서로에게 배우면서 성장하는 선의의 라이벌도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역대 유명했던 라이벌들은 누가 있을까요? 한마디 더, 당신에게 라이벌은 어떤 의미인가요?
성황리에 막 내린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감동이 아직도 가슴 한편에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동계올림픽 중 어떤 종목을 좋아하시나요? 태극전사 전통의 메달밭 ‘쇼트트랙’ 0.01초의 아슬아슬한 승부 ‘스피드스케이팅’ 아니면 격렬한 몸싸움의 ‘아이스하키’. 모두 매력 있는 스포츠지만 그래도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한다면 은반 위 백조들이 우아함을 겨루는 피겨스케이팅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승부의 세계, 특히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무대에선 우정과 선의의 경쟁이란 아름다움도 있지만 짙은 승부욕에 때론 안타까운 사건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오늘의 라이벌 낸시 캐리건과 토냐 하딩처럼 말입니다.
두 선수간의 악연은 제17회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인 1994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 피겨스케이팅은 하딩-캐리건 양자구도에 떠오르는 샛별 미셸 콴이 도전하는 삼각 구도를 보이면서 황금기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딩은 미국 선수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며 고난도 점프로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캐리건은 우아한 연기로 알베르빌 동계올림픽(1992년) 동메달, 세계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1992) 은메달을 따내며 연일 승승장구 중이었습니다.
여자 피겨스케이팅 미국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이틀 앞둔 1월6일. 한 괴한이 디트로이트의 연습장에서 캐리건의 허벅지를 둔기로 내리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충격으로 캐리건은 대회 출전을 포기했고 선발전에서 하딩이 1위, 콴이 2위를 차지해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합니다.
이 사건은 발생 일주일 만에 범인이 체포되며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붙잡힌 범인들은 놀랍게도 하딩의 남편과 매니저, 이들은 “하딩의 사주를 받고 피습사건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으며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하딩은 “나는 캐리건 피습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도 잠시, 남편과 매니저가 캐리건을 피습할 것을 알고 있었다며 혐의를 일부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에 미국 피겨선수연맹은 미국 피겨 역사상 최초로 선수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24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최근 캐리건 습격 사건을 다룬 블랙코미디 영화 ‘아이, 토냐(I, Tonya)’가 개봉되며 두 라이벌의 오랜 악연이 또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하딩은 피겨스케이팅 선수 자격이 박탈된 이후 프로복서, 종합격투기 선수에 도전하다 건강 문제로 은퇴, 지금은 재혼하고 미국 워싱턴주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사건 피해자였던 캐리건은 아이스쇼 출연, 피겨대회 해설자, 저술 활동 등 전형적인 은퇴 선수 코스를 밟고 있으며 2004년에는 피겨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습니다. 최근에는 첫 아이 출산 직후 겪었던 비만증 경험을 토대로 다이어트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악연으로 이어진 두 피겨 라이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최근 개봉한 영화 ‘아이, 토냐’를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황원종기자 wonjja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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