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는 상처받은 소녀를 구해내기 위해 그 소녀의 엄마가 되기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이보영은 극 중 수진 역을 맡았다. 아동학대를 당한 혜나(허율 분)를 데려와 윤복이라 부르고 사랑을 나눠줬으며, 이를 통해 자신 또한 어릴 적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최근 이보영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tvN 수목드라마 ‘마더’(극본 정서경, 연출 김철규) 종영인터뷰를 나눴다.
사실 이보영이 작품을 끝내고 인터뷰에 임한 것은 꽤 오랜만이다. 이보영은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너무 아쉽다”며 ‘마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렇게 따뜻한 현장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15분 엔딩을 보면서 거의 통곡했다. 하나도 남김없이 소중한 배우들과 함께한 작품이 끝이 나는 게 아쉽고 가슴이 아팠다”고 소감을 전했다.
“하고 싶던 이야기였다. 애를 낳고 고민하던 문제들,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있던 것들이 대본에 있었다. 왜 나에게만 모성을 강요하나. 애를 낳고 나서 매일 혼나는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 춥게 입혔냐’ ‘양말을 안 신겼냐’ 등. 그런데 신랑이 애를 안고 있으면 자상하다며 칭찬하더라. 울컥했다. 나는 당연히 준비된 것처럼 엄마가 돼 있어야 하는데 오빠는 같은 부모이면서 칭찬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보영은 동료 배우 지성과 결혼했고 슬하에 딸 한 명을 두고 있다. 배우 부부는 밖엘 나가면 주위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다 아이까지 낳으니 꽂히는 시선은 더욱 많아졌다. 지성이 아이를 안고 자신은 대본을 보고 있으면 어느 샌가 시집을 잘 간 여자, 나쁜 엄마가 돼 있었다고. 이보영은 “안 보이는 곳에서의 상황적 관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에 대해 생기는 기대치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백일이 될 때까지 스스로 반성과 자책을 많이 했다. 엄마는 제가 딸이니 밤중수유를 하지 말라고 했다. 초유만 먹이고 모유는 먹이지 말라더라. 그런데 엄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저에게 모유를 먹이라 했다. 산후조리원에서 이보영만 밤중수유를 안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아이는 불쌍한 아이가 됐고,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나쁜 엄마인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나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곤 딸을 낳고서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출산한 자신의 몸이 힘들고 아픈데 아이가 예뻐 보일 정신이 있었을까. 영화나 드라마처럼 애를 안고 눈물이 나는 일도 없었단다. 아이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도 공감이 가질 않았고.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니 달라졌다고. ‘마더’ 속 수진처럼 아이와 함께한 시간 자체가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쌓여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만약 애를 안 낳았으면 이 작품을 못했을 거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모든 아이가 다 예쁘진 않다. 하지만 세상에 아픈 아이는 없어야 하고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역배우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옛날에는 아이 때문에 딜레이가 되면 촬영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보영의 진심은 작품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됐다. 이보영은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에 많은 엄마들이 슬퍼해주고 공감해준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엄마라는 존재를 하나로만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자영(고성희 분)처럼 저만 생각하는 엄마가 있을 수 있고, 희생하는 엄마가 있을 수도 있다고.
“‘엄마는 당연히 이래야 돼’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얘기를 왜 여자에게만 하나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보시는 분도 있고 공감하는 분도 있을 거다. 세상엔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가 다 있다. 저도 그렇다. 우리 딸에게 최고의 엄마일 수도 있지만 가장 먼저 상처를 주는 성인일 수도 있는 거다.”
이보영은 워킹맘은 항상 미안해하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본인은 부부가 프리랜서라 다른 한 명이 일을 하면 다른 한 명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이 되지만 주변 사람만 봐도 아이를 낳고 직장을 관둔 엄마가 많다고. 자신의 딸이 나중에 커서 아이 때문에 직업을 놓거나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한단다.
끝으로 ‘마더’를 보면서 비슷한 고민을 가졌을 엄마들에게도 “나쁜 엄마가 아니다”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기 인생을 잘 살길, 죄책감을 가지지 않길 바란다고.
“지금 애한테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람이다 보니 아이에게 실수를 하고 상처를 줄 수 있지만 그건 서로 살아가면서 맞춰가는 게 아닐까. 엄마라는 무게에 짓눌려서 내가 나쁜 엄마가 아닐까 자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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