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5월3일 서울 한강 백사장이 무려 30만명의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너무 많이 몰리다 보니 인도교와 흑석동 고개 인근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들이 몰려든 이유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해공 신익희의 정견 발표를 듣기 위해서였다. ‘사람다운 표준을 세우자’ ‘우리나라는 민주 국가다’라는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은 당시 자유당의 부패와 독재에 시달리던 국민들에게는 시쳇말로 ‘사이다’였다.
언어의 힘은 강하다. 말 한마디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힘을 주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33만명의 연합군이 포위당하자 유럽 각국은 물론 영국도 패배의 두려움에 떨었다. 그때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의회 연설대에 섰다. 그는 연합군을 무사히 구출한 후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싸운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패배의 치욕을 승리에 대한 굳은 의지로 바꾼 처칠의 이 연설로 연합군이 이후 5년간 전쟁의 고통을 견디며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미사여구를 많이 쓴다고, 말을 많이 한다고 명연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한두 단어나 침묵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로 유명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272개 단어로 이뤄진 2분 분량이었지만 역사상 최고의 명연설 중 하나로 꼽히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추모 연설 도중 51초의 침묵으로 깊은 감동을 줬다.
침묵의 연설이 다시 등장했다.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생존자인 에마 곤살레스가 워싱턴에서 열린 총기규제 강화 시위에서 연설 도중 4분 25초간 말을 멈췄다. 연설 시간을 총기 난사가 자행된 6분 20초에 맞춰 희생자들이 겪었을 아픔과 공포에 공감하자는 의도. 거리를 가득 메운 80만명 역시 일제히 침묵으로 슬픔과 분노를 함께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의 외침에 휴가지에 가는 것으로 답했다. 물론 그런다고 어른들이 못 바꾼 세상을 바꾸려는 젊은이들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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