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시장에서 줄곧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온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점유율 기준 1위 자리를 중국 BOE에 빼앗겼다고 한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가까운 미래에 폴더블·대형 디스플레이로 구성된 제품 등의 출현으로 수요의 폭발적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러한 점유율 순위 변동은 우리에게 뼈아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디스플레이 시장의 양상은 과거의 배터리 시장을 회상하게 한다. 배터리 시장은 디스플레이 시장보다 먼저 중국에 추격당했다. 배터리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었던 LG화학은 지난 2016년 생산량 측면에서 중국 CATL에 추월당했고 현재는 기술 격차마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디스플레이 다음은 반도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1993년 일본 도시바를 제치고 D램 분야 세계 1위 메이커로 올라선 삼성은 이후 줄곧 세계 최고의 메모리반도체 제조회사로 시장에서 군림해왔지만 이러한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낸드플래시의 경우 삼성전자와 중국 기업의 기술 격차가 3~4년에 불과하며 D램의 경우 낸드보다 격차가 더 크지만 올해 말부터 중국이 양산에 들어감에 따라 경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산업 전반에서 중국 기업들이 선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배터리 산업 분야에서 자국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할 뿐 아니라 ‘자동차 전기차 배터리 산업발전 지도의견’ 등으로 해당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또 반도체 산업 부문에서는 오는 2025년까지 205조원을 쏟아부어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이 같은 중국 정부의 행보에 우리 정부의 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전략적 무역정책 상황으로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특정 산업 분야에서 경쟁하는 서로 다른 국가에 속한 두 기업이 있다. 그런데 한 기업은 자신이 속한 국가로부터 정부 보조금 등 강력한 지원을 받고 다른 기업은 지원을 받지 못한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다른 기업과 치열한 경쟁 상황인데도 성장하는 반면 다른 기업은 홀로 고군분투하지만 적자 등의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결국 적자가 누적된 기업은 해당 산업 분야에서 퇴출당하게 되고 이는 그 기업의 손실을 넘어 국가적 손실로 확장된다. 반대로 정부 지원으로 성장한 기업은 이제 경쟁 상대가 없어졌기 때문에 보조금이 없더라도 흑자를 보게 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경쟁력 강화 등 선순환 구조가 구축돼 기업 차원의 이익을 넘어 국가적 이익으로 확대된다.
물론 중국 기업이 자국의 대규모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우리 기업들을 추격하거나 추월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삼성전자에 추격당한 후 지금은 몰락해버린 일본 반도체회사들의 모습이 현재 막 중국 기업에 추격당한 LG화학이나 LG디스플레이의 미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누가 쉽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정부가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중국의 쾌속 진격에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주력 산업 분야에 세제 감면, 규제 완화, 병역특례 확대 등을 고민해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장기적 대응 방안으로 인재 유출 방지 대책, 산학협력 강화 등 고민해볼 거리가 많다. 무엇이 됐든 정부가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면밀한 분석과 전문가의 자문에 기반한 적극적인 대책을 실시하도록 강력하게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축적된 잠재 역량을 일깨울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기업 경쟁 로드맵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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