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간 연방제 통일을 거쳐 중립국을 창설하자는 제안을 미·소정상회담에 나선 소련 정상을 통해 미국에 은밀히 전달한 사실 등이 비밀해제된 1987년도 외교문서에서 새롭게 확인됐다.
외교부는 30일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30년 이상 경과 외교문서 1,420권(23만여쪽)을 원문해제(주요 내용 요약본)와 함께 국민에 공개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북한 부탁을 받아 1987년 12월 9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때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건넨 문서에는 ▲ 남북한 각각 10만 미만의 병력 유지 및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 남북한이 서명하는 불가침 선언 ▲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 ▲ 남북한 군을 단일한 ‘민족군’으로 통합 ▲ 남북한이 제3국과 체결한, 민족적 단합에 위배되는 모든 협정 및 조약 폐기 ▲ 남북한으로 구성된 연방공화국 창설 및 공화국이 중립국가 및 완충지대임을 선언하는 헌법 채택 ▲ 연방공화국의 단일 국호 유엔 가입 등 북한의 제안들이 담겼다.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민주화 운동의 불꽃이 뜨겁게 타올랐던 전두환 정권 말기 민주화 운동 탄압과 관련한 한미 외교당국간의 소통 내용도 일부 소개됐다. 6월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진행되던 1987년 9월 미국 정부가 “노사 분규가 악화되어도 대화를 통한 정상적 타협으로 사태가 수습되기를 희망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군의 사용을 회피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전달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해 우리 외교당국이 “우발적 사고”라면서 사태의 파장이 국제사회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전개한 사실,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에 실린 정권 비판성 기고문과 변형된 태극기 삽화에 강력 항의한 사실 등도 확인됐다. 아울러 미국 정부가 1986년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우리 측에 기물 파손 등을 이유로 1만 2,000여달러의 변상을 요구한 사실도 외교문서에 적시됐다.
동서냉전의 막바지에 이뤄진 당시 남북간의 치열한 체제 경쟁과 갈등의 단면도 이번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공개된 문서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 앞서 긴장완화 등을 위해 이뤄진 미국의 대(對)북한 외교관 접촉지침 완화인 이른바 ‘시거 구상’의 이행이 KAL기 폭파사건으로 철회된 과정과, 당시 북한 외무상이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우간다를 상대로 올림픽 보이콧을 종용한 정황도 포함돼 있다.
더불어 북한이 1983년 일본인 토목기술자를 초청해 땅굴과 관련해 자문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밖에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미국의 대이란 무기밀매 사건, 조지 슐츠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한, 남남(南南)협력에 관한 비동맹특별각료회의, 한·프랑스 수교 100주년 기념사업, 미국의 종합통상법안에 대한 대책 등 관련 문서들도 이번에 공개됐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572)의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이 가능하며, 외교문서 공개 목록 및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도서관 등에 배포된다. 원문 요약(해제) 내용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와 모바일에서도 검색할 수 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외교부는 매년 자체 심사를 거쳐, 1994년부터 25차에 걸쳐 총 2만5천여권(340만여 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김주환 인턴기자 juj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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