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제주4·3 특별법 개정안’의 제70주년 추념일 전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제주4·3 사건의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하겠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회의장까지 나섰지만 여야 의원들이 이를 외면한 셈이 됐다.
3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주4·3 특별법의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는 이 법안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세 차례 열린 행안위 행정 및 인사법심사소위원회에서는 관련 법안을 논의 테이블에 한 차례도 올리지도 않았다.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일부개정안’으로 권은희 바른미래당·오영훈·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보상위원회’를 설치해 사건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보상·지원금 지급 등을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4·3사건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을 무효화하는 방안도 담겨 있다.
올해가 4·3 사건의 70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정치권 인사들은 앞다퉈 진상규명과 희생자 보상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머리조차 맞대지 않았다. 행안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28일 행안위를 소집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끝내 열리지 않았다. 다만 한국당 의원들도 울산지방경찰청의 김기현 울산시장 압수수색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회의를 열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치공작이라고 반발하며 회의를 거부했다. 여야가 정쟁만 벌였던 탓에 3월 임시국회에서는 한 걸음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사실상 이날 회의가 무산되면서 추념일 전까지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던 당초 목표는 물 건너 갔다. 4월 임시국회가 다음 달 2일에 열리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당일 법안 처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정 의장은 지난 28일 제주4·3 평화공원을 찾아 “4·3 특별법 개정안이 제안된 지 시간이 흘렀지만 여러 정당이 법안 심의에 소홀히 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올해 70주년이 헛되이 지나가지 않도록 의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 달 3일 열리는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올해가 70주년인 만큼 추념식 참석 의사를 밝혀 왔다. 문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낼지 주목된다.
/류호기자 r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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