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멕시코 국경장벽과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연계해 멕시코가 불법이민을 방치하면 나프타를 폐기하겠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더 이상의 ‘다카(DACA·불법체류 청년의 추방 유예)’ 협상은 없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해 워싱턴 정가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오는 7월1일 대선을 앞두고 1일(현지시간)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멕시코에서는 유력 대선후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강력히 반발하며 여론 결집에 나서 나프타 재협상은 당분간 진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서 “멕시코는 남쪽 국경을 통해 사람들이 멕시코로 들어오고 그다음에 (불법이민자들이) 미국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멈추게 하는 데 거의 하는 일이 없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그러면서 “멕시코는 우리의 바보 같은 이민법을 비웃고 있다. 대규모 마약과 사람들의 유입을 멈춰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들의 캐시카우인 나프타를 끝낼 것이다. 장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달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를 발표하면서 나프타 재협상 상대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의 관세를 면제했지만 불법이민 문제가 부각되자 나프타 폐기를 앞세워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등을 역설한 것이다.
다만 미국 내에서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그가 즐겨보는 폭스뉴스에서 방송된 ‘미국으로 향하는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반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나프타 폐기는 캐나다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만큼 그의 엄포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날까지 자신 소유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리조트에서 주말을 보낸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폭스뉴스의 인기 진행자 션 해니티 등과 골프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워싱턴 정가는 당장 나프타 폐기를 우려하기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장벽 건설과 폐지하기로 한 다카의 대체입법을 연계하려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멕시코를 통해 대규모로 들어온 불법이민자들이 “다카를 이용하려 한다”면서 “국경순찰대원들이 ‘잡았다가 놓아줘야 하는’ 터무니없는 민주당의 법 때문에 제대로 일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공화당은 더욱 강경한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핵 옵션’(상원의 법 통과를 현행 60석에서 51석 이상으로 낮추는 것)으로 가야 한다”며 “더 이상의 다카 협상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이민자 문제를 내세워 다카 폐기를 강행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마러라고리조트에서 기자들이 “다카 협상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고 묻자 “멕시코는 자국에 흘러들어온 불법이민자들을 미국으로 보낸다. 더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장벽 건설과 나프타 폐기 압박의 집중 타깃이 된 멕시코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저마다 ‘반(反)트럼프’를 천명하며 미국과의 대립각을 세우고 나섰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중도 좌파 모레나(MORENA)당의 안드레스 마누엘 오브라도르는 이날 대선 출정식에서 “당선된다면 멕시코와 멕시코 국민은 어떤 외국 정부의 ‘피냐타’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피냐타는 중남미 국가에서 파티 때 눈을 가리고 막대기로 쳐서 넘어뜨리는 인형으로 멕시코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이 더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멕시코의 트럼프’로 불리는 오브라도르는 온건 좌파로 여당인 우파의 제도혁명당(PRI)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짝 각을 세우며 대선 경쟁에서 40% 넘는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오브라도르에 이어 20%대 지지율로 그를 뒤쫓는 리카르도 아나야 코르테스 국민행동당(PAN) 후보 역시 이날 대선 집회를 앞두고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도 강하고 위엄있는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며 장벽 건설과 나프타 재협상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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