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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도 재력순"… '흙수저' 울리는 취업준비 비용

최악의 실업난에 고액 취업 학원·인터넷강의 성업

"돈 있으면 빨리 취업"은 상식된 지 오래

정부 지원 프로그램은 실효성 떨어져 취준생 '외면'

취업준비생들이 지난해 9월 서울 동대문 DDP에서 열린 ‘청년희망 실현을 위한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에’ 들어가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서울경제DB




# 지방 출신으로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박모(24)씨는 취업 시즌이 시작되며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그는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달 월세 50만원과 생활비 60만~70만원을 겨우 마련하고 있다. 매년 1,00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매달 수십만원씩 들어가는 취업 준비 비용은 막막하기만 하다. 박씨는 “아르바이트 하느라 학점도 좋지 않은 마당에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취업 가능성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이미 빚만 수천만원인데 대출을 더 늘릴 수도 없고 넉넉지도 않은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학기에 졸업을 미룬 홍모(25)씨는 지난달부터 취업 전문 학원에 다니며 자기소개서 첨삭과 기업 인적성 특강을 받고 있다. 한 달에 100만원을 훌쩍 넘는 비용은 집에서 지원을 해 주는 터라 취업 준비에만 전념할 수 있다.

이들 사례에서 보듯 사상 최악의 청년 취업난에다 취준생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까지 겹치면서 ‘흙수저’ 대졸자들을 울리고 있다. 취준생들 사이에서 ‘돈 있으면 더 빨리 취업한다’는 말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학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장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준생을 지원대상에서 오히려 제외하는 등 현실과 겉도는 지원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월 잡코리아·알바몬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준생들이 취업 준비를 위해 쓰는 금액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김주환 인턴기자


지난 1월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과 함께 취준생 1,4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 월 평균 27만2,302원을 지출하고 있다. 2016년 22만8,183원, 2017년 24만713원에 이어 3년 연속 늘어난 수치다. 또 취준생 4명 중 3명(75.1%)은 취업 준비 비용을 아르바이트로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악의 실업난에 청년들이 취업 대비 전문학원과 인터넷 강의를 너도나도 찾으면서 취업준비 부담도 늘고 있는 것이다. 취준생들의 불안감을 이용한 전문 학원들의 상술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령 한 인기 인터넷 업체의 ‘합격보장반’ 강의는 한달 수강료가 30만원대에 이른다. 강남역에 위치한 한 학원의 ‘프리미엄 패키지’는 ‘대기업 취업 전 과정을 책임진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수업료만 100만원을 받고 있다. 1:1 맞춤 컨설팅의 경우 회차당 가격이 적게는 9만원, 많게는 20만원에 이르는데도 사전 예약이 필수 일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취준생 입장에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이들 학원과 인터넷 강의를 외면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바로 이들이 가진 정보력 때문이다. 한 취업 전문 학원에 다니고 있는 홍모(25)씨는 “혼자 준비할 때는 얻기 힘든 기업분석 자료나 합격자 자소서를 참조하다 보니 서류 합격률이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업 학원들의 수강 후기에는 수강생들에게만 제공되는 합격 자소서·면접 기출 질문 같은 일종의 ‘족보’나 학원 자체적으로 만든 자료가 도움이 되었다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이들 구직자들의 취업정보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2년부터 구직 의사가 있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취업성공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우선 청년 구직자가 각 지역별로 지정된 고용센터나 대학 캠퍼스에 설치된 상담실에서 적성검사와 취업 상담을 받으면 20만 원 안팎의 참여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또 향후 진로에 따라서 유형별로 학원 등의 교육기관과 연계한 직무교육 비용을 지원받거나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아울러 집중 취업알선을 받을 경우에는 20만~30만원 가량의 구직촉진수당을 3개월간 3회 지급한다.

고용노동부는 구직 의사가 있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취업성공패키지’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웹사이트 캡처


문제는 취업성공패키지가 장기간 아르바이트에 시달리고 있는 취준생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패키지 참여 대상자를 30시간 미만의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한정하고 있다. 주당 30시간 이상 근로를 하고 있다면 취업자로 분류돼 프로그램에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정작 생활비나 주거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일을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 중 많은 수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또 프로그램이 정보제공, 교육 등의 측면에서 취업 준비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불만도 크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8월 전국 18~29세 성인 남녀 7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취업성공패키지 만족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참여한 취준생 61%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불만족 이유(복수응답)로는 ‘취업능력 향상 미흡’(48.6%), ‘교육·훈련과정이 단순함’(43.2%), ‘훈련기관 선택이 제약됨’(40.5%) 등이 꼽혔다.

전문가들은 취준생들 간 양극화 심화의 원인으로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 발생하는 ‘스펙 인플레이션’을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취업난의 대책으로 취업성공패키지나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정책을 내놨지만 근본적으로 일자리의 질이 좋아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며 “단기적으로 청년수당을 확대하고 구직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도움이 되도록 취업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일자리 질을 높여 수요-공급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환 인턴기자 juj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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