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언어는 화살처럼 칼처럼 내면을 뚫고 들어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만, 어떤 언어는 빗물처럼 음악처럼 오래오래 가슴을 적시며 힘들 때마다 내면의 빛과 소금이 되어준다. 대학원 석사 과정 때 선배들과 교수님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비판받으며 만신창이가 되었던 나는, 내 글을 유일하게 좋게 봐주셨던 한 교수님의 담담한 칭찬을 가슴에 새기며 외로운 날들을 버틸 수가 있었다. “이 학생의 글을 보십시오. 학문은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비틀거리며 조금씩 조금씩. 완벽하진 않지만, 느리게 한 걸음씩.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항상 비난만 받던 나에게 그분의 그 말씀은 내게 계속 비틀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내게는 이음새 하나 없이 완벽하게 매끄러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없었지만, 내 망설임과 서성거림을 숨김없이 글 속에 녹일 수 있는 무모함과 솔직함이 있었다. 그게 나의 진정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십여 년 후에야 깨달았다.
삶의 고단함에 지쳐 공부를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많았다. 내게는 재능이 부족한 것 같아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니체의 문장이 마치 독초를 가득 섞은 신묘한 영약처럼 폐부 깊숙한 곳을 찔렀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힘들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리며 ‘이 고통은 아직 나를 못 죽였으니, 이제 강해지는 일만 남았네’라고 생각하곤 다시 일어날 힘을 얻곤 했다.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한 번!” 이 문장은 너무 비장해서 떠올릴 때마다 소름이 돋곤 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참으로 뭉클한 문장이었다. 얼마나 생을 꾸밈없이 사랑하면, 이 끔찍한 생조차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 반복할 용기가 생기는 것일까. 삶이 위험천만하게 보일 때마다, 나는 니체식 사유의 향기가 그윽한 이 두 문장을 되새기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잡았다.
얼마 전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앨리슨 제니의 당찬 수상 소감을 들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생애 첫 아카데미 조연상을 58세에 거머쥔 그녀는 트로피를 쥐자마자 전세계의 관객들을 향하여 당차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오직 제가 혼자 이뤄낸 겁니다(I did it all by myself).” 그 당찬 수상수감에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지만, 그 한 문장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그날의 그 영광을 쟁취했는지 알 수 있었다. 수십 명의 지인들에게 ‘모두 이분들 덕분입니다’라고 감사하는 인사말에 익숙해진 나는 ‘이건 다, 그 누구도 아닌 제가 해낸 거라고요!’라고 선언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부럽고도 눈부셨다. 누구의 특별한 지원도 없이 오직 자력으로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그 자신에 대한 감사의 말로 들렸다. 뻔한 수상소감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경의와 존중’이 가득 담긴 그 수상소감 덕분에 깨닫게 되었다. 남들이 칭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론 내가 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존중하며,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많은 일에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자존감이 위축될 때는 버나드 쇼의 문장을 읽으며 기운을 냈다. “실수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낸 인생보다 훨씬 존경스러울 뿐 아니라 훨씬 더 유용하다.” 용기를 주는 문장이다. 실패가 두려워 무엇에도 도전하지 않는 삶보다는 실수와 실패의 위험을 감내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졌다. 온갖 욕심과 미련 때문에 삶을 바라보는 눈이 흐려질 때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문장을 읽는다. “나는 인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월든>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토록 닳고 닳아버린 생이 눈부신 축복으로 다시 시작되는 소리를 듣는다. 아름다운 문장들 속에서 나는 내가 반드시 내 손으로 헤쳐나가야 할 생의 장애물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해 본다. 우리가 그토록 원망하고, 증오하고, 타박한 모든 시간들 속에 반드시 우리가 놓친 눈부신 생의 진실이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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