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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스캔들...日의 그림자를 비췄다

자위대 '이라크 공문 은폐'

거대·복잡한 방위성 조직의

계파별 권력 다툼 드러내

사학 스캔들 공문 조작은

고위 공무원에게 알아서 기는

'손타쿠' 문화 반영 분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신조 총리의 사학 스캔들 여파를 가까스로 수습하고 있던 일본 의회가 이번에는 ‘자위대 공문 은폐 파문’으로 또다시 마비됐다. 두 사건은 ‘공문서 조작 가능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더 깊게는 민간 공직자가 자위대를 통솔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손타쿠(알아서 기기) 원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일본 관계의 병폐가 이번 사건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복조’ 누르지 못한 ‘정장조’=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각의(국무회의)가 전날 ‘일하는 방식 개혁’ 입법안을 의결해 의회에 발의했지만 오는 6월20일까지인 정기국회 기간에 입법과정이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일하는 방식 개혁’은 경직된 일본의 노동시장을 유연근로제 도입 등으로 개혁해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정책으로 이번 정기국회의 핵심과제였다.



의회의 발목을 잡은 것은 재무부의 모리토모 사학 공문 조작에 이어 불거진 ‘자위대 이라크 일보’ 은폐 논란이다. 지난해 야당은 지난 2003~2009년 이라크 재건사업에 파견됐던 자위대가 전투지역에 들어갔을 수 있다는 의혹에 관련 일지를 보고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나다 도모미 당시 방위상은 “폐기하고 없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방위성의 조사 결과 1만4,000건의 일지가 남아 있었으며 자위대는 문건 존재 사실을 지난해 3월에 인지하고도 1년 가까이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이 전날도 항공자위대의 일보 3건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발표하는 등 사안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신문은 ‘문민통제’의 기반이 무너졌다며 이번 사건의 기반에는 민간 공무원과 자위대 사이의 갈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방위성에는 ‘방위 7족’이 있다. △방위상, 정무관 등 고위직에 임명되는 ‘정치가’ △‘정장조’로 불리는 ‘사무관’ △기술관 △교관 △‘제복조’로 불리는 ‘육상자위관’ △해상자위관 △항공자위관이다. 총 25만 명으로 구성된 방위성에 총 7개 부류의 공무원이 들어차 권력 다툼이 심화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자위대가 고위 간부인 사무관·방위상에게 보고해야 할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정치인·사무관과 육상자위관 출신 공무원의 세력다툼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07년에는 고이케 유리코 당시 방위상과 사무관 출신 키리야 다케마사 차관이 인사를 두고 다투다 키리야 차관이 경질되는 등 ‘정치가’와 ‘정장조’의 불화까지 드러났다.

◇‘알아서 기는’ 정부=모리토모 스캔들은 정치가 앞에서 ‘손타쿠’하는 공무원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모리토모 스캔들은 모리토모학원이 정권과의 유착관계를 이용해 국유지를 감정가보다 턱없이 낮은 헐값에 매입했다는 논란이다. 당시 가고이케 야스노리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이 신설 초등학교의 명예교장으로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를 위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모리토모 스캔들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아베 총리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해 9월 중의원을 해산, 10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의혹을 여론의 관심에서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꺼지지 않은 의혹의 불씨는 더 큰 불길로 되살아나 아베 정권을 덮치기 시작했다. 아사히신문은 모리토모학원 국유지 매각을 담당하던 긴키 재무국이 2015~2016년에 작성한 문서에는 있었던 ‘특례’ ‘학원의 제안에 응해 감정평가를 실시, 가격을 제시했다’ 등의 문구가 재무성이 지난해 5월 국회에 제출한 공문에서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치권은 아베 총리 등 윗선이 문서 조작을 지시했는지 조사하고 있지만 아사히신문 등은 지시 없이도 공무원들이 알아서 문서를 조작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손타쿠’다. 중국 고서 ‘시경’에 나오는 이 단어는 지난해 한 야당의원이 “모리모토학원의 초등학교 인가과정에서 재무성의 손타쿠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추궁한 이래 유행어로 부상하고 있다. 도쿄신문은 들불처럼 번진 이 단어가 일본 사회 특유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관료들이 총리나 내각 각료에 알아서 숙이는 모습, 자민당 의원들이 지도부로부터 제명당하지 않기 위해 당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모습 등이 자주 보이면서 일본 정계가 대표적인 ‘손타쿠’ 문화의 무대로 꼽힌다. 센슈대학 오카다 겐지 교수는 “민주주의는 보통 사람이 모여서 합의를 형성해 정책을 결정하기에 실수가 있을 수 있다”며 “손타쿠는 실수를 미리 검증해 정책 수준을 높이는 것을 가로막아 민주주의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며 경계했다.

방위성 공문 보고 누락에도 ‘손타쿠’가 있었을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방위상이 아베 총리에게 문건의 존재를 보고한 시점이 2018회계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 예산을 처리한 후라는 점도 논란을 낳고 있다. 지난달까지 야당은 사학 스캔들 논란으로 정부의 책임을 물으며 예산안 심의를 거부했다. 정권의 부담을 고려해 발표 일자를 고의적으로 미뤘거나 그동안 문건을 수정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생긴 것이다.

사학 스캔들 청문회 개최로 가까스로 정상화된 의회는 지난 5일 야6당이 중의원 본의회에 불참하면서 또다시 마비됐다. 야당은 사학 스캔들에 더해 방위성 문서와 관련한 청문회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번 정기국회 기간에 일하는 방식 개혁은 물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비준안도 심의해야 한다며 “스캔들 진상 규명이 물론 중요하지만 일본의 경제력을 강화하는 법안의 정비가 늦어지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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