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어버이날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자 ‘어버이날’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더니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엔 관련 청원이 쇄도하고 있다. 쉬는 날이 하루 더 생긴다는 데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센 이유는 뭘까.
작년 5월 7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자식이 부모에게, 청년이 어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날을 만들자는 뜻을 담았다”며 “어버이날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10일 “어버이날 출근해야 되기 때문에 가족들 얼굴을 보기 어렵고 부모님께 죄송한 날이 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우선 기혼 여성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어버이의 날’이 아니라 ‘시어버이의 날’이 된다”며 공휴일 지정에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하루에 양가 부모를 찾아뵙기는 힘드니 자연히 시댁만 방문하게 될 텐데, 이렇게 되면 결국 며느리들의 부담만 가중된다며 반대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안 그래도 이미 설과 추석, 기존 명절마다 시댁 위주로 찾아가 ‘효도’를 해야 하는 판에 어버이날까지 공휴일이 되면 ‘제3의 명절’ 마냥 또 시댁에만 ‘체류’하면서 친정 못 가는 며느리 설움만 더 느끼게 될 것이라는 하소연이다. ,
때 아닌 시댁·친정 논란이 벌어진 와중에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이 노부모들의 소외감을 오히려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는 어버이날이 평일일 경우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일 하느라 바빠서 못 온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공휴일 지정 후엔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비스직 종사자나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공휴일이 돼도 쉬지도 못하는데 상대적 박탈감만 느껴진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김 모(27)씨는 “어차피 나와는 상관 없는 정책”이라며 “무턱대고 휴일만 늘리지 말고 다 같이 쉴 수 있는 정책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도 이런 점에 대해 10일 논평을 통해 “(어버이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면 비정규직,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가슴이 타고 애가 마르는 공휴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제대로 된 효도 기회를 벌써 계획 한 사람들도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윤 모(26)씨는 “직장 생활에 치여 부모님과 데이트를 한 지 오래됐다”며 “올해부터 어버이날이 공휴일이 되면 부모님과 오붓하게 영화도 보고 멋진 곳에서 저녁 식사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향을 떠나있는 사람들에게도 희소식이다. 직장인 구모(30)씨는 “이번 5월에 황금연휴가 생기면 고향인 부산에 내려갔다 와도 부담이 크지 않다”며 “하루빨리 공휴일로 지정됐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또 공휴일을 ‘제대로’ 쉴 수 있는 직장인들은 5월 징검다리 연휴 기회가 더 늘어난다고 기대한다. 당장 이번 5월 8일 어버이날부터 공휴일로 지정되면 5월 5일 토요일을 시작으로 5월 6일 일요일, 어린이날 대체 공휴일인 5월 7일까지 더해 총 나흘 간의 황금연휴가 이어진다.
이같은 찬반 논란에 대해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을 둘러싼 논란의 배경을 “같은 정책이라도 각자가 어떤 이해관계를 가졌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해관계를 일일이 계산해서 공휴일을 지정하기 보다는 그 공휴일이 가지는 의의에 좀 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전통을 반영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양지윤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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