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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허물어진 구마모토성벽엔 임진왜란의 아픈 역사가...

■'울산마을' 정류장 남아 있는 일본 구마모토

'조선 침략' 선봉에 섰던 적장 가토

울산 백성 동원해 만든 구마모토성

2016년 대지진으로 아직 복구 작업

옛마을 재현 민속촌선 성곽 볼수있어

'日정원 진수' 스이젠지 공원도 명소

에도 시대의 마을을 재현한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에서 바라본 구마모토성.




한국 여행객의 ‘일본 사랑’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거리가 가까우니 부담 없고, 사람들은 친절하니 낯선 곳에서 얼굴 붉힐 일이 없다. 후미진 골목의 어느 귀퉁이에서도 식도락을 만끽할 수 있다. 모든 게 만족스러우니 돌아와도 후회가 없고,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이 일본이다.

구마모토는 ‘웬만한 대도시는 다 둘러봤는데 그래도 또 일본이 생각난다’는 여행객, ‘한적하고 여유로운 소도시에서 일본의 정취를 음미하고 싶다’는 관광객에게 망설임 없이 추천할 만한 곳이다.

규슈 지방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구마모토는 인천공항에서 1시간 15분이면 닿는다. 이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뭐니 해도 구마모토성. 물론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성은 일본의 다른 많은 성이 그렇듯 슬픈 역사를 품고 있다. 구마모토성은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조선 침략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가토 기요마사가 쌓은 성이다. 가토는 전쟁 당시 선조의 아들인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아갔던 장군으로 구마모토성을 지을 때에는 조선인들을 대거 동원하기도 했다.

스이젠지 공원을 찾은 여행객들이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이 도시의 볼거리 중 하나가 지금도 시민을 싣고 거리를 달리는 노면 전차인데 ‘우루산 마치(울산 마을)’라는 이름의 정류장이 바로 성 축조 과정에서 조선인을 동원했던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조선의 남부 지역을 한창 휘젓고 다니던 가토 장군은 1597년 11월 울산에 진을 치고 성을 쌓기 시작했다. 성을 완공한 직후 가토는 5만명에 달하는 조·명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해 일본으로 달아났다. 이후 절치부심한 가토가 구마모토에 성을 축조하기 위해 데려온 조선인의 상당수가 울산 출신이었고 그들이 마을을 형성하면서 ‘우루산 마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족의 처절한 역사가 서려 있는 구마모토성은 현재 입장이 불가능하다. 지난 2016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고 규모인 7.3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지금까지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도 시대의 마을을 재현한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을 찾은 방문객들이 상점가를 거닐고 있다.




대신 민속촌처럼 구마모토의 옛 마을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거리인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에 가면 어깨너머로 곳곳이 허물어져 내린 성의 외양을 확인할 수 있다.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은 구마모토성 바로 인근에서 여행객들이 에도시대의 전통과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놓은 관광 시설로 각종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구마모토를 상징하는 흑곰 캐릭터인 ‘구마몬’도 상점가 이곳저곳에서 관광객을 맞이한다.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 입장은 무료지만 내부에 위치한 ‘구마모토성 박물관’을 구경하려면 별도의 요금(성인 300엔)을 내야 한다.

스이젠지 공원도 구마모토가 자랑하는 여행 명소다. 17세기 구마모토 영주로 군림했던 호소카와 가문이 3대에 걸쳐 조성한 스이젠지 공원은 일본 정원 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마치 왕릉을 연상케 하는 봉긋한 둔덕들이 고요한 호수를 끼고 여기저기 솟아 있고 관리의 손길을 제대로 받은 나무들은 기세 좋게 뻗어 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산책을 즐기다 보면 공원 한복판에는 호소카와 가문의 위패를 모신 신사가 보인다. 전통차와 다과를 맛볼 수 있는 찻집에 앉아 경치를 감상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원래 입장료는 성인 기준 400엔이지만 ‘노면 전차 일일 이용권’을 보여주면 360엔으로 할인해준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적 업적과 생애를 정리해 놓은 기념관 형식의 옛집.


소설에 관심 있는 여행객이라면 ‘나쓰메 소세키 옛집’을 추천한다. ‘마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대문호 소세키는 20대 후반이던 1896년 구마모토의 한 고등학교에 영어 교사로 부임하면서 이 도시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영국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4년 3개월 동안 구마모토에 거주했다. 이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소세키는 무려 5번이나 이사를 했다고 한다. 관광객들을 위해 기념관처럼 꾸며놓은 이곳은 소세키가 세 번째로 살았던 집이다. ‘스이젠지 공원’ 노면 전차 정류장에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소세키 옛집은 그의 생애와 작품, 구마모토에서의 생활 등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해놓고 있다.

■구마모토 여행 알뜰 팁

아소 구마모토 공항의 국제선 터미널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숫자 ‘1’이 큼지막하게 박힌 공항버스 탑승장이 보인다. 탑승장 옆에 있는 기계에서 730엔짜리 승차권을 구매한 뒤 버스를 타고 ‘교통센터’ 인근에서 내리면 수월하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노면 전차의 1회 탑승권과 일일 이용권의 가격(성인 기준)은 각각 170엔, 500엔이다. 반나절만 구마모토를 둘러보고 다른 도시로 넘어갈 게 아니라면 세 번만 이용해도 이득인 일일 이용권을 구매할 것을 추천한다. /글·사진(구마모토)=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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