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일축하고 일본에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압박하며 미일 정상회담 첫날부터 무역 분야에서 강공을 날렸다. 일본에서는 북한 문제에서 두 정상이 보인 찰떡호흡은 겉치레에 불과할 뿐 정상회담 둘째날 통상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베 신조 총리가 끌려다닐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의 첫날 회담일정을 마친 뒤 트위터에 “일본과 한국은 미국이 TPP로 돌아가기를 바라겠지만 나는 그 협정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양자협정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이득이 되며 우리 노동자들에게도 더 낫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 시작에 앞서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미국은 언젠가 일본과의 FTA를 실현하고 싶다”며 일본을 압박했다. 커들로 위원장은 “일본은 좋은 친구이자 동맹국”이라면서도 “무역 문제에서 이견이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많은 방위장비를 구입하고 있지만 미국도 일본으로부터 대량의 자동차를 구매한다. 무역에 대해 협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직 있다”며 무역과 관련해 격한 공방이 오갈 것임을 시사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두 정상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친밀한 분위기’를 보였다며 미일 안보 공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일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통상 발언에 다시 긴장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납북 일본인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는 관측이 컸지만 무역 문제에서 여전히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날 무역 의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일대일 회담에서만 다뤄졌고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는 일본은 양자 FTA를 체결하면 피해가 커질 것으로 보고 TPP 수호에 집중하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미 무역적자 해소에 효과적인 양자 무역협정을 고수하고 있다. 다자무역체제에서는 농산물·지적재산권 등 미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시장에서 충분한 이익을 받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농업단체들이 농산물 수출 확대를 위한 무역협상을 압박하고 있어 일본에 대한 양자 FTA 체결 압박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니치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양자 FTA) 조기 교섭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두 정상은 회동 첫날인 이날 북한 등 안보 논의에 집중한 후 이틀째인 18일에는 통상 문제를 집중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져 트럼프 대통령의 본격적인 무역 압박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거래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고율 관세에서 일본을 제외해줄 것을 요청해야 하는 아베 총리의 방미 둘째날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최고위급 직접 접촉’을 언급한 것이 일본의 외교 성과를 대중의 관심에서 밀어내는 고단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 TBS 방송은 “기밀 정보를 당돌하게 밝히는 등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후 (아베 총리를) 멋대로 휘두르는 장면도 예상된다”고 전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