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헝가리 출신 미국 언론인인 조지프 퓰리처가 만든 ‘퓰리처상’은 미국 기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예이다. 1만5,000달러의 상금이나 금메달 때문이 아니다. 발로 뛰어 진실을 알렸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퓰리처상을 처음 수상한 ‘뉴욕월드’의 허버트 스워프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6년 석 달 동안 독일을 돌아다니며 ‘독일 제국 내부에서’라는 시리즈물을 실었고 뉴욕타임스(NYT)의 데이비드 핼버스탬과 AP통신의 맬컴 브라운은 월남전의 이면을 담은 생생한 기사와 부패한 응오디지엠 정권에 대한 고발로 1964년 국제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하지만 퓰리처상이 반드시 영예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특종에 눈이 먼 기자도 나타난다. 2003년 NYT는 1932년 당시 자사 소련 특파원이던 월터 듀런티에게 수여된 상을 철회해달라는 의견서를 퓰리처상위원회에 제출했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우크라이나 기근 사태가 스탈린이 농업 집단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기아였음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거나 왜곡·과장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비록 퓰리처상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듀런티는 이로 인해 무덤에서도 ‘상에 눈이 먼 기자’가 되고 말았다.
미국 NYT와 워싱턴포스트(WP)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진영과 러시아 간 내통 의혹을 다룬 기사로 올해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다. 트럼프의 끊임없는 ‘가짜 뉴스’ 공격도 언론사 소유주에 대한 압박도 이들의 수상을 막지 못했다. 권력 또는 강자에게 굴하지 않고 진실을 알리려는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리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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