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라운드에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전가람(23)은 골프팬들의 시야 밖에 있었다. 1타 앞선 공동 선두에 김태훈, 공동 3위에 주흥철 등 ‘빅네임’들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 데뷔한 전가람은 지난해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4위가 최고 성적. 스트로크플레이 대회는 지난해 진주저축은행 카이도 오픈 공동 8위가 최고 순위였다.
22일 경기 포천의 대유몽베르CC 브렝땅·에떼코스(파72)에서 열린 KPGA 투어 2018시즌 개막전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총상금 5억원). 우승상금 1억원과 초록색 재킷의 주인공은 지척에 집을 둔 신예 전가람이었다. ‘동네 어른’들의 든든한 응원을 등에 업은 전가람은 이글 1개와 버디 5개를 터뜨리는 동안 보기는 1개로 막는 안정적인 경기운영으로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4라운드 6언더파 66타를 더해 최종합계 15언더파. 2위 박효원을 4타 차로 따돌리는 여유 있는 우승이었다.
앞선 26개 대회에서 우승이 없는 신예지만 경기 내내 전가람의 얼굴에서는 부담감 대신 편안함이 묻어나왔다. 대유몽베르CC에서 5개월간 캐디로 일한 경험 때문이었다. 고교 3년 때 KPGA 정회원 자격을 얻은 전가람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치킨 배달에도 뛰어들었다. 2015년에 캐디 일을 시작한 것도 생계를 위해서였다. 전가람은 캐디로 DB손보 프로미오픈을 구경하면서 다시 골프선수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투어 프로가 된 그는 “캐디로 일하면서 18번홀 티잉그라운드에 설 때마다 ‘프로 대회 때 최종 라운드 선두로 이곳에 서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곤 했다”고 한다. 상상은 현실이 됐고 전가람은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지난해까지 포천시에서 가까운 연천군의 후원을 받기도 했던 전가람은 훤히 꿰고 있는 코스에서 동료들의 시원한 축하 물세례를 받았다. 그는 이 대회에서 지난해 공동 21위, 2016년 공동 23위 등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왔다.
174㎝의 크지 않은 체구에도 평균 288.5야드(지난해 전체 10위)의 드라이버 샷 거리를 뽐내는 전가람은 이날은 정교한 그린 주변 어프로치 샷과 퍼트까지 받쳐줘 우승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칩샷이 그대로 홀에 ‘골인’하는가 하면 6번홀(파5)에서는 11m 이글 퍼트가 들어갔다. 전가람은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물을 건너는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고는 우승을 확신하는 제스처를 선보였다. 이후 15m 버디 퍼트로 팬서비스까지 화끈하게 마무리했다. 지난해 진주저축은행 오픈 막판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4개 홀 연속 보기로 무너졌던 전가람은 생애 처음 챔피언조로 나선 최종 라운드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했다.
경기 후 전가람은 “캐디로 일할 때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의 골프백을 멘 적이 있다. 그때 동기부여가 됐는데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올라 더욱 뜻깊다”면서 “올해 대상(MVP)까지 노려보겠다”고 당차게 밝혔다.
박효원은 11번홀까지 무려 8타를 줄이며 전가람에 2타 앞서 갔지만 12번홀(파5) 아웃오브바운즈(OB)에 따른 더블보기가 치명적이었다. 공동 선두였던 김태훈은 81타를 치고 무너졌다. 1언더파 공동 39위.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지고도 컷 통과에 성공해 화제를 모은 이승민은 이날 4오버파를 더해 16오버파 62위로 마쳤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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