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입 시안을 내놓고 국가교육회의에 최종결정을 미루자 신문에선 국민에게 정책 결정을 떠넘기고 대입제도에 대혼란을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수시와 수능 절대평가라는 방향으로 대입제도를 이끌던 정부가 갑자기 수능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의 적정비율-수시와 정시의 통합-수능 상대평가,절대평가와 원점수방식의 도입 여부 등 서로 모순된 정책을 모두 도마에 올려놓으며 선택을 미룬 이유가 뭘까.
신문들은 수능 절대평가는 하고 싶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시 확대를 원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수능 원점수 부활카드까지 꺼내 들었다는 해석으로 기울고 있다. 정부가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으로 비판받는 학생부종합전형 대신 정시전형 확대를 원하는 여론의 무마에 나섰다고 보는 것이다. 일부 신문은 “지방선거 전 입시개편안 내라”고 압박에 나선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입김까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수능 절대평가를 얘기한 적 없다”며 자기부정까지 나서며 ‘입시의 정치화’로 국가백년대계가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책 폭탄돌리기” “4단계 정책 하청”
교육부가 공정성 강화와 단순화의 원칙 아래 공론화를 통한 대입제도 개편을 주문하자 국가교육회의는 “대입 개편 특위와 공론화위원회 구성 등을 거쳐 국민의견을 수렴한 뒤 오는 8월초까지 최종 권고안을 확정해 교육부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문들은 “이해관계가 복잡한 대입 제도를 석달여만에 개편할 수 있겠나”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교육부-국가교육회의-대입특별위원회-공론화위원회를 거치는 4단계 ‘정책 하청’으로 사실상 대입 개편안 ‘폭탄 돌리기’로 변질될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다. 최대 108가지 정책 조합이 가능한 시안 중에서 어느 한 방안이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경우에는 단일안 마련이 쉬울 수 있으나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는 갈등만 계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입개편 여론수렴과정서 ‘금수저 학종전형’의 폐해를 정시전형을 늘려 보완하자는 입장과 줄세우기식 교육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수시체제를 유지,확대하자는 입장이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또 수시와 정시 통합, 수능 최저학력 폐지, 수능과목 구조 등 뜨거운 쟁점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묘수찾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입 특위 친정부, 진보성향 인사 일색” “공론화 과정 정부 입김 더 크게 작용 우려”
대입 특위가 출범하면서 대입제도 개편의 공론화과정이 본격화됐다. 국가교육회의는 전문성과 중립성에 중점을 둬 13명의 위원을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교육계 등에선 학종을 선호하는 인사들이 전진배치됐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교육부가 공정성 강화와 단순화의 원칙을 제시하며 대입 개편 시안을 내놓았지만 공론화 과정서 현장 목소리보다 정부의 입김이 커지며 당초의 취지와는 다르게 학종 유지와 수능 절대평가로 전환하는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 ‘사교육 전형’으로 비판받는 학종의 불공정성이 이번 대입제도 개편의 출발이었음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울어진 공론화’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대입제도는 계급, 사회정의, 신분의 갈등이 총집결된 문제이다. 저마다 다른 소질에 따라 다양한 직업이 귀천없이 존중받고 서로 다른 삶의 가치가 그대로 인정받기 힘든 사회현실서 교육은 계층간 이동의 유일한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대입제도는 계층간 갈등의 집합장이며 이 복잡한 갈등을 완화하려면 사회구조와 인식 개선과 함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와 공교육 정상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가지만 잘하면 대학을 갈 수 있게 하겠다‘는 수시전형의 원래 취지는 이미 ’모든 것을 잘해야 대학을 갈 수 있다‘로 변질됐고 갈수록 불신만 쌓이고 있다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비판을 귀담아 들을때가 됐다.
학종전형이 확대되면서 학교와 교사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고 교과,비교과.서류 등 컨설팅 사교육이 크게 늘어났다. 또 내신,학생생활기록부와 정시 준비 등 학생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거기다가 학교마다 입시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 ’될성부른 싹‘을 미리 선정해 학생부를 집중관리하면서 나머지 학생들을 사실상의 ’수시 포기자‘로 만들고 있다. 또 교수 부모가 자신들의 논문에 자녀 이름을 올렸다 적발되는 사례가 해마다 늘고 있으며 심지어 “주관적인 학종전형 평가요소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자연히 교사와 학교에 신뢰가 떨어지고 공교욱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수시 체제에선 내신이 한번 삐끗하면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수시는 포기하고 바늘구멍 같은 정시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갈수록 좁아지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시’의 문이 넓어지길 학수고대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입개편안을 놓고 “학종 유지” “정시 확대” 여론전이 갈수록 과열되고 있다. 대입제도 개편 확정안이 나오는 8월, 당초의 공정성 강화와 단순화의 원칙이 지켜질지 아니면 선거를 앞둔 여론 무마용 꼼수정책으로 끝날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법기자 gble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