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청주, 그 오래된 반찬 이야기’ 편이 전파를 탄다.
뿌리 깊은 내륙의 양반고을, 청주. 잠들어 있던 청주의 맛이 깨어난다! 매끼 곰삭은 손맛과 지혜로 차려낸 청주의 오래된 반찬 이야기를 만나본다
▲ 피반령 너머 말미장터의 봄날 찬거리
청주의 동쪽 관문이라 불리는 피반령. 고갯길이 아홉 번이나 꺾이는 이 험준한 고개 아래 오래전 장터가 열렸다. 이름하여 말미장터! 골목마다 주막이며 마구간이 흥하고 소 돼지를 잡는 육간대가 있을 정도로 큰 장터였지만 이제는 ‘말미장터’라는 마을 이름만이 남았다. 봄이 오면 들에 찬거리가 넘쳐난다는 말미장터. 그중에서도 3, 4월 제철 맞은 쪽파와 풋마늘은 이른 봄 반찬 걱정을 덜어준다.
밭에서 갓 솎아낸 풋마늘은 통째로 까나리액젓, 식초, 매실액기스 등에 담아 장아찌를 만들고, 제철 맞은 쪽파는 멸치액젓과 고춧가루, 매실, 깨소금을 넣어 짠지를 해 먹는다. 여기에 딱 어울리는 마을의 별미가 있다. 이곳이 장터임을 기억해주는 음식, 장터국수다. 반죽에 콩가루를 넣고 홍두깨로 국수를 미는 것이 특징인 말미장터 국수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국수 한 그릇이지만 진한 세월의 맛이 느껴진다. 장터는 사라졌어도 그 추억과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남아있는 말미장터 마을의 밥상을 찾아가 본다.
▲ 600년 청주 반가, 문화 류씨 종갓집의 반찬 이야기
청주 내수리 땅에는 오래된 한옥이 한 채 있다. 300여 개의 장독마다 양반가의 맛이 익어가는 곳. 600년 전통의 청원 문화 류씨 종가다. 예부터 내륙이라 콩밭이 흔했던 청주에선 바다가 멀어 귀했던 소금보다는 간장으로 반찬의 간을 했다는데. 류씨 종가의 34대손 김종희 종부가 가장 애지중지 아끼는 것도 바로 집안 대대로 내려온 씨간장이다.
신선한 봄의 기운을 담은 얼갈이배추에 직접 담근 매실청과 고춧가루, 식초를 넣고 마지막으로 종가의 간장을 넣어주기만 하면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새콤달콤한 봄동 겉절이가 완성된다. 마당에서 바로 딴 머위나물과 민들레 역시 간장을 넣고 무치면, 금세 밥 한 그릇 뚝딱할 수 있는 좋은 반찬이 된다. 집안의 대표적인 내림 음식 담북장김치찜의 맛을 내는 비법 또한 간장이다. 돼지갈비에 묵은지를 넣고 간장으로 감칠맛을 낸다. 반찬 하나에도 집안의 역사와 종부의 세월이 깃든 종가의 내림 밥상을 만나본다.
▲ 100년의 유산, 음식 조리서 ‘반찬등속’으로 본 청주의 옛 반찬
내륙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양반 음식문화가 지금도 남아 있는 청주. 백 년 전 청주 사람들의 밥상에는 어떤 반찬이 올랐을까? 그 실마리를 풀어줄 고서적이 발견됐다. 바로 ‘반찬등속’이다. 1913년 청주 상신리에 살던 진주 강씨 집안의 며느리 밀양 손씨가 한글로 기록한 음식 조리서 ‘반찬등속’에는 김치와 짠지, 과자, 떡 등 46가지 반찬 조리법이 나와 있다.
‘반찬등속’의 대표적인 요리는 인절미에 실같이 자른 고추와 달걀지단을 붙이는 화병, 소금에 절인 오이에 열무를 넣고 조기 젓갈로 감칠맛을 더하는 외이김치, 꿀물에 재워 단맛을 더한 북어를 간장에 담가 먹는 북어짠지다. 특히 북어짠지는, 내륙이라 귀한 해산물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선조의 지혜가 돋보이는 청주의 옛 반찬이다. ‘반찬등속’에 담긴 청주의 음식을 통해 100년 전 이 땅의 밥상과 그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 오지에서 만난 꽃가마 삼총사의 곰삭은 인생 이야기
예전 금강이 흘렀던 나루터 끝자락에 외딴 마을이 있다. 바로 ‘벌랏마을’이다. 청주의 동막골로 불리는 이곳은 한국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을 만큼 청주 제일의 오지로 손꼽힌다. 이 마을에는 같은 가마를 타고 시집 온 세 할머니가 있다. 신탄진에서 시집온 맏이 최홍순 할머니와 대전 출신의 이정의 할머니, 충청도 양반집이라기에 저 멀리 전남 고흥에서 시집온 막내 김선덕 할머니까지. 늘 함께해 주변 마을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는 벌랏의 삼총사다.
예부터 봄이면 산에 가득한 제철 고사리와 금강을 따라 바다 멀리에서 온 조기를 넣고 찜을 해 먹곤 했다는 삼총사! 궁벽한 살림에도 봄이면 큰맘 먹고 사치를 부렸던 귀한 반찬이다.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어 생계를 꾸려온 벌랏마을 사람들. 밤새 한지로 창호지를 만드는 고된 작업을 할 때 허기진 배를 달래주었던 음식이 바로 대추곰이다. 삶은 대추를 채 썰어 가마솥에 넣고 푹 고아주면 위에 부담되지 않는 훌륭한 밤참이 된다. 산간벽지에서 함께 한지를 만들고, 자식을 키워냈다는 삼총사. 벌랏마을의 밥상에는 곰삭은 반찬보다 더 깊은 인생의 맛과 추억이 담겨 있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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