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의 두 차례 정상회담과 확연한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회담 장소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은 평양에서 열렸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각 서해 직항로와 경의선 육로로 방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냉전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이 회담 장소다. 그것도 남측 평화의집이 회담장이라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녘땅에 발을 내딛는 첫 사례로 기록됐다. 다만 판문점이라는 제한된 장소와 실무적 성격을 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특성상 대대적인 축하행사는 생략됐다. 1차 정상회담 당시 김 전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동안 수십만 평양시민의 환영을 받았고 노 전 대통령도 역시 평양 시내에서 인파 속에 카퍼레이드를 했다. 대표단 규모도 크게 줄었다. 정부와 청와대 인사로 구성된 공식수행원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별 특별수행원 등 수행원 규모만 해도 2000년에는 130명, 2007년에는 150명이었다.
대통령 임기 중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시점도 과거와 다르다. 첫 남북 정상회담은 김 전 대통령의 임기 중반인 2000년 6월에 열렸고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07년 10월에야 평양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열렸다. 북측과 협의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경우 임기 중 복수의 정상회담, 나아가 정례화된 정상회담까지 내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이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임기 전반이라는 시점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10·4선언에 남북협력 증진을 위한 다양한 구상을 담았지만 같은 해 말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추진동력을 상실했다.
회담의 핵심의제가 ‘비핵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과거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이전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는 주로 남북관계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은 남북 간 협력 방안과 통일 문제를 큰 틀에서 다뤘고 2007년의 10·4선언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착수, 백두산 관광 실시 등 구체적 협력 방안 등을 담았다. 반면 이번에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특수한 상황 아래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가 본격 논의된다. 결국 이번 회담의 비핵화 논의 결과는 오는 5월 말∼6월 초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상기자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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