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의 성과를 어떻게 현실에서 구체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김 위원장도 이날 이야기했듯이 아무리 중요한 합의라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남북 정상이 핵없는 한반도 실현과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합의를 하기는 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앞으로 수많은 논의를 통해 세부적인 조율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디테일에 들어 있는 ‘악마’를 제거하지 않으면 이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가장 큰 쟁점인 비핵화만 하더라도 핵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원론적인 언급만 있었을 뿐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앞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위해서는 기존의 완성된 핵무기와 관련시설, 고농축우라늄(HEU) 등을 어떻게 폐기할 지에 대한 세부방안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관문이 남아 있다. 종전 선언도 마찬가지다. 남북 정상이 종전을 통해 군사적 긴장관계를 완화하자고 했지만 그러려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 등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조율이 필수적이다. 최근 들어 통상마찰 등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이 조율과정이 우리의 생각대로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서도 국제 제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연락사무소 설치 등에 대해서는 의견접근을 이뤘지만 민감한 의제는 남북 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현실화하는 데는 앞으로 미국과의 의견조율이 필수적이다.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에곤 바르 박사가 말했듯이 현실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최소한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전 선언도 주요 당사국인 남북미중 간 합의 이전에 우선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북한 체제 보장과 주한미군 역할 변경에는 미국의 의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5월 말이나 6월 초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간의 의견조율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싶겠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지난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첫발을 겨우 뗀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갈 길은 지금보다 훨씬 더 멀고 험난하다. 여기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지금까지 공들여온 남북관계 개선도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만다. 남북회담의 성과가 북미회담의 성공을 이끌고 이것이 다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번 합의가 앞으로 제대로 이행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국과의 의견조율이 필수적이다. 판문점이 더 이상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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