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광고 패러디에도 자주 등장하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898~1967)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마그리트는 벨기에에서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브뤼셀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처음에는 벽지공장의 디자이너로 일하다 광고 스케치를 하게 됐습니다. 한동안 큐비즘(20세기 초 회화를 비롯해 건축, 조각, 공예 등 국제적으로 퍼져 전파된 미술 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나 파리에 체류하며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했는데요. 일상적인 사물을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화가로 유명한 마그리트의 그림 중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이미지의 배반’입니다.
이 작품은 흔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그림에서 보이는 파이프 아래 쓰여진 글귀 때문인데요. 내용이 곧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이거든요. 매우 단순한 이유죠? 그런데 막상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엔 약간 의문이 듭니다. 분명 그림에는 파이프가 그려져 있는데 그게 파이프가 아니라니. 대체 무슨 말인지. 마그리트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본질을 그림으로 다루곤 했는데 ‘이미지의 배반’은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가 그 사물의 성질과 일치하기 때문에 ‘파이프’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파이프’라는 사물을 ‘파이프’라는 언어로 부르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불리게 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파이프 한 개 달랑 그려놓고 이렇게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다니, 정작 우리 같은 독자들은 참 헷갈리네요.
마치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하나의 몸짓이었지만,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그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화자와 사물의 합의, 즉 우리가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일상의 것들이 사회적 합의에 결정된 것들이지 그 사물이나 본질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그림을 살펴볼까요. 이 그림은 ‘빛의 제국’이라는 작품인데 르네 마그리트가 196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점 이상을 그린 연작인데요. ‘빛의 제국Ⅱ’의 배경은 교외의 한적한 마을입니다. 불이 켜진 집의 창문과 가로등의 불빛이 어둠을 고즈넉하니 밝히고 있군요. 그냥 풍경화인데? 하고 스치기엔 뭔가 특이점이 보이지 않나요? 자세히 보면 그림 속 땅위의 시간은 분명 밤인데도 어찌된 일인지 하늘은 환한 대낮입니다. 파란 하늘에 유유히 떠가는 흰 구름. 그의 그림에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한낮 하늘,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낮과 밤이라는 전혀 다른 두 이미지. 빛과 어둠이 이토록 평화로운 공존이라니. 이 연작은 후기로 가면 어둠이 깔린 땅은 점점 낮아지고 맑은 하늘은 점점 높아지는데요. 그것은 마치 그의 내면세계가 점점 빛의 밝음과 유년의 평화 속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마그리트는 또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죠.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장이다. 규칙도 없고 순서도 없고 선악도 없다.”
그동안 우리는 파이프 그림을 보고 그냥 ‘파이프’라고 믿었던 생각은 사실은 나도 모르게 학습돼 절대 바뀔 수 없는 관습으로 굳어졌던 건 아니었을지. 오랫동안 불려졌던 사물의 이름이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마그리트도 이런 작은 변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겠죠. 내 삶의 패턴에 갇혀 결코 변화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아닐까.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탈이 필요할 때 ‘이미지의 배반’을 한번 천천히 떠올려보세요. 원하던 답이 아닐지라도 몽글몽글 다른 상상의 날개가 펼쳐질지도 모르니까요.
한뼘 미술관, 다음회에 더 알찬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이수진기자 ppo198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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