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 강국의 전문가들은 지난 27일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좋은 출발”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향후 한반도 비핵화 실현 과정에 여러 난관이 예상되는 만큼 주변국들의 지원과 문재인 대통령의 현명한 전략적 중재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국제 문제 전문가인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여정의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면서 “비핵화 실현을 위한 추가 조치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일단 큰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북한 입장에서 핵은 현 체제를 보장해주는 안전장치라는 점에서 핵을 포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확실한 담보를 얻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 원장은 이어 “북한은 비핵화 후 중국을 거울삼아 개혁개방을 희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체제 보장과 함께 북한 경제개발을 위한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상응 조치들이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인 진징이 베이징대 명예교수도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는데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비핵화 의지도 강해질 것”이라며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김 위원장의 개혁개방 관련 속뜻을 잘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향후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구체적인 조치에 대한 약속이 나올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남북 정상회담은 향후 비핵화 의제 해결의 핵심 협상 과정인 북미 정상회담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프로그램 종식을 이뤄냄으로써 스스로 공언했던 협상가로서의 위대한 면모를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지, 비핵화를 한다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무엇을 내줄 것인지가 향후 협상의 가장 큰 쟁점”이라고 지적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만약 진정으로 비핵화를 원한다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면서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원자로 등 핵시설 불능화를 실행하고 오는 2020년까지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해체에 합의한다면 체제 안전은 물론 경제적 혜택 등 원하는 걸 이른 시일 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일본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중요한 다리 역할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자국을 포함해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원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경제연구소의 아시아전략센터 소장인 게오르기 톨로라야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지는 문 대통령의 역할에 달렸다”면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타협할 수 있고 거래할 수 있는 상대이며 만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잘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화협정은 일차적으로 북미 간 협정이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일본 등이 이를 보증해야 한다”며 “러시아와 일본을 제외한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 합의로 견고한 평화협정이 체결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한반도 문제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북한은 생존전략을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수정하려 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지나친 압력에는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한국도 어려운 길을 시작한 만큼 도중에서 끝낼 수 없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평화와 번영,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하니 장기적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뉴욕=손철특파원 hb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