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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나는 동경 135도가 왜 한국 표준시 기준일까

[김정은의 '남북 표준시 통일' 계기로 살펴본 이유는]

한반도 중심인 127도30분으로 바꾸면 30분 단위 표준시돼

1시간 단위 맞추려면 중국 지나는 동경 120도 써야할판

일제 잔재 아닌 국제흐름·생활리듬 등 고려한 '선택의 문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 북한의 표준시간을 서울의 표준시에 맞춰 통일하겠다고 제안했다./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과 북의 표준시간을 통일하자고 제안하면서 북한의 표준시인 ‘평양시간’은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한국 표준시를 일본을 지나는 동경 135도에 맞춰 쓰고 있는 이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일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등에 따르면 표준시는 경도 0의 시각을 기준으로 나눈 시간이다. 지구 한 바퀴 360도를 24시간으로 나눈다고 보면 15도마다 1시간씩 차이가 난다. 1972년 1월 1일 정한 협정세계시(UTC)가 현재 세계 표준시의 기본이 된다. 우리나라 표준시는 동경 135도 자오선을 기준으로 삼는다. 협정세계시보다 9시간 빠르다(UTC+9)는 뜻이다.

동경 135도선은 한반도가 아닌 일본을 지나기 때문에 종종 논란을 빚었다. 일본 식민지 시대의 잔재라는 이유에서다. ‘UTC+9’를 표준시로 삼은 건 1912년 1월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우리 기준에 맞게 국토 중심부를 지나는 127도 30분 표준자오선에 맞춰 표준시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3년 전인 2015년 8월 15일부터 표준시 기준을 기존의 동경 135도에서 동경 127도30분으로 바꾸고 ‘평양시간’으로 명명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시간은 남한보다 30분 늦다. 당시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의 표준시간을 빼앗았다”며 변경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에 따르면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북한의 표준시간을 서울의 표준시에 맞춰 통일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른바 ‘평양시간’이 3년만에 사라지는 셈이다. 김 위원장은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며 “이건 같은 표준시를 쓰던 우리 측이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북한과 같은 표준시 기준을 쓴 적이 있다. 6·25 전쟁 직후 이승만 정부에선 동경 127도 30분을 새 표준시 기준으로 결정했다. 그러다 1960년대 다시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삼는 법안을 만들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국회에서 종종 일본 잔재를 없애고 국가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표준시를 127도 30분 기준으로 바꾸자는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지난 2013년 11월 21일 당시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등 37명은 표준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의원들은 “아직 일본으로부터 시간적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있다”며 “표준시 개정을 통해 영토 주권과 역사를 재확립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국가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표준시법 개정안은 18대 국회(2008년 7월 23일), 17대 국회(2005년 8월 12일), 16대 국회(2000년 8월 12일) 등에도 발의됐다.

하지만 제출된 법안은 회기내 모두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유는 표준시를 30분 단위로 설정할 경우 국제적 흐름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30분 단위로 표준시를 정한 국가는 극히 드물다. 이 때문에 1시간 단위인 다른 나라와 국제 교류 등의 측면에서 유무형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을 지나는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쓰지 않으면서도 1시간 단위를 유지하려면 중국을 지나는 동경 120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 경우 지금보다 시간이 한 시간 늦어지기 때문에 수십년간 굳어진 국민들의 생활 리듬이 급작스레 바뀌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또 식민지 잔재라는 이유로 표준시 기준을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꿨다가는 ‘중국 사대주의냐’라는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결국 표준시 기준을 정하는 것은 ‘선악의 차원’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 리듬이나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선택의 문제’라는 얘기다. /연유진 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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