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가 대제학으로 근무하던 1582년 선조의 명을 받아 쓴 ‘학교모범(學校模範)’에 이런 내용이 있다. “스승을 쳐다볼 때 목 위에서 봐서는 안 되고 선생 앞에서는 개를 꾸짖어서도 안 되고 웃는 일이 있더라도 이빨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 스승과 겸상할 때는 7푼만 먹고 배부르게 먹지 말아야 한다.” 조선 시대 성균관 학칙(學則)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길에서 스승을 만나거든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길 왼쪽에 서 있어야 한다. 말을 타고 가거든 몸을 엎드려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 모두 스승을 공경하고 성심을 다해 모실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렇게 전해 내려온 스승에 대한 존경과 예우가 현대에 와 구체화한 것이 스승의 날이다. 우리나라 스승의 날의 유래는 충남 강경여중 청소년적십자의 봉사활동이다. 단원들이 병환 중인 선생님을 위문하고 퇴직한 스승님을 찾아 위로한 것이 계기가 돼 1963년에 5월26일이 은사의 날로 정해졌다. 2년 뒤에는 겨레의 스승인 세종대왕 탄신일(5월15일)로 기념일이 변경 지정됐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부패척결운동인 서정쇄신(庶政刷新)에 휘말려 1973년 폐지됐다가 1982년 부활했다. 스승의 날은 우리처럼 유교 전통이 있는 아시아 국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태국은 1월16일을 ‘완와이크루’로 불리는 스승의 날로 지정해 기념한다. 전국 학교가 휴교하고 경축 행사를 할 정도다. 중국은 1985년 새 학기 시작 즈음인 9월10일을 교사절로 제정했고 베트남은 스승의 날인 11월20일에 제자들이 선생님 댁을 찾아 인사를 드리거나 선물을 하는 것이 관례로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면서 스승의 날의 의미가 퇴색돼가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개혁개방 바람이 불면서 예전과 같은 관례가 사라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특히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더 그렇다. 학생 대표가 아니면 선생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최근 현직 교사가 스승의 날을 폐지해달라고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했다는 소식이다. 교권 신장과 스승 존중의 풍토를 만들자는 취지가 사라지고 학생도 교사도 부담스러운 날이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퇴하고 학교를 빨리 떠나고 싶은 스승의 날’이라니 안타깝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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