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천안함 폭침으로 금쪽같은 우리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고 연평도 포격으로 온 나라가 가슴을 졸였고, 목함지뢰 폭발로 다리를 잃은 병사의 모습은 우리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핵·경제 병진정책을 체제 보장의 보검으로 삼아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하고 수차례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린 위협도 망각하는 듯하다.
이미 완성된 핵을 포함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방안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고래 심줄보다 질긴 한미공조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부푼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르더라도 머리는 냉정해야 할 때다. ‘비핵화 샴페인’은 완전히 숙성될 때까지 한켠에 넣어두고 ‘디테일의 악마’와 맞서는 힘겨운 사투(死鬪)를 벌여야 한다. 비핵화 데드라인(최종시한)을 확정짓고 사찰과 검증을 받아내야 디테일은 완성된다.
북한이 비핵화 선언을 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사건이다. 한반도 역사를 새로 쓰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29일 청와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부 (풍계리) 핵실험장을 5월 중 폐쇄할 것”이라며 “앞으로 자주 만나고,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게 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말했다. 호기롭게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존재이유는 ‘북한 비핵화’다. 경협재개를 포함한 교류와 협력은 종속변수다. 서로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하는 ‘말(言)의 파티’는 이제 끝났다.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을 담보하는 본게임에 들어가야 한다. 북한 비핵화의 화룡점정은 5월 안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보장할 구체적인 로드맵과 실행방안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과거 핵을 폐기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오후 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남북회담 결과를 공유했다. 종전 선언 합의에 대해서도 공감을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목표를 확인한 것은 남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에도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며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비핵화 방법과 사찰·검증이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수시로 핫라인으로 통화하면서 ‘절대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
미국은 CVID 방식에 기초한 일괄타결을 선호한다. 반면 북한은 동결·불능화·폐기 등 단계별로 경제보상을 요구하면서 협상 칩(chip)을 차곡차곡 높여나갈 게 뻔하다. 우리 정부로서는 혹여 북한이 과거 핵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비핵화 기간을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 공조해 북한에 명확한 입장을 보여줘야 한다. 이번 핵 담판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북미회담을 지원해야 한다. 북한의 과거 이율배반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약속 파기에 대해서는 그에 따른 추가 제재가 있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2008년 6월27일 비핵화 의지를 밝히기 위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핵실험은 이어졌다. 핵확산금지기구(NPT) 잔류를 명기했던 제네바합의(1994년), 모든 핵무기 포기를 약속했던 9·19공동성명(2005년), 핵실험 모라토리엄을 발표했던 2·29합의(2012년) 등 북한의 약속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향기로운 장미꽃에는 가시가 숨어 있는 법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2인3각’ 비핵화 전선을 굳건히 지키면서 북미회담에서 가시(과거 핵)를 제거해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디테일의 악마가 다시 활개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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