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의지가 없는 북한에 남북교류는 헛된 일이지요. 북한 주민의 인권과 삶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탈북 소설가이자 북한인권운동가인 이지명(65·사진)씨는 지난 27일 TV로 생중계된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장면들을 애써 외면했다. 기대감보다 안타까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성과로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오히려 북한 당국이 주민 통제의 고삐를 더 죌 것”이라며 “단속과 통제 강화로 지하경제에 기대 근근이 버텨온 빈곤층은 더욱 살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대북지원 물량이 장마당으로 지탱해온 북한 경제와 주민들에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주민 식량배급이 정상화되고 배급량이 늘면 그동안 눈감아줬던 장마당 장사를 단속하게 되고 그로 인해 주민들은 유일한 생계수단을 잃게 된다”고 전했다.
함경북도 청진 출생인 그는 지난 1990년대 중후반 수십만명의 주민을 굶어 죽도록 내몬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집필을 중단한 ‘조선작가동맹’ 출신 작가다. 1998년 살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붙잡혀 북송된 후 3년간 탄광에서 노역하다 다시 2004년 탈북해 남한에 정착했다.
탈북 전 거주했던 김책시에서 굶어 죽은 주민 20여명을 직접 땅에 묻었다고 회고한 그는 “당시 극심한 식량난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북한 당국이 불만을 가진 주민들을 정치범으로 몰아 가족을 모두 잡아가는 일이 빈번했다”며 “인간성을 상실한 북한 정권이 주민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고 했다.
탈북 후 5년 동안 일용직을 전전하던 그는 한 탈북자단체 잡지 편집부장을 맡으면서 다시 펜을 잡았다. 그는 “문학으로 비참한 북한의 생활상과 인권유린을 세상밖에 알리는 것이 탈북 문인의 소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문학단체인 국제팬클럽에 2012년 가입한 국제펜망명북한작가센터에 합류해 지난해까지 3년간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현 이사장인 ‘탈북 등단작가 1호’ 김정애씨와 함께 총 10편의 단편소설집 ‘서기골 로반’을 이달 초 펴냈다. 국내 첫 탈북문인 단편집이다.
15명 정도의 ‘망명북한작가센터’ 작가들은 북한 인권 실상을 고발한 작품을 쓰고 이를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국제펜협회 투옥작가위원회 콘퍼런스에 탈북인 대표로 참가한 이씨는 해외 작가들에게 인권참상을 알렸다. 그는 “국제회의에 작품 번역본을 내놓자 200여권이 순식간에 동났다”며 “해외에 비해 남한 작가들의 관심은 한참 모자란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탈북작가의 인권문학에 대한 정부 지원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거의 끊겼다고 전했다.
통일이 되면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이씨는 “북한 주민을 외면하는 남북교류는 진정한 교류가 아니다”라며 “우리 정부가 북한에 인권문제를 당당하게 묻고 뱃심을 갖고 개방을 요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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