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일자리의 창조적 파괴
4차 산업혁명으로 물질의 풍요는 증가한다. 기술융합의 물질혁명 다음 과제는 분배의 핵심인 일자리 문제일 것이다. 옥스퍼드, 다보스포럼(WEF), 한국노동연구원 등 숱한 기관이 4차 산업혁명에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과도한 일자리 경고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일반인의 경계심을 자극해 정작 필요한 규제개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해보자.
일자리는 산업혁명 250년 역사상 창조적 파괴를 거듭해왔다. 이 과정에서 기술혁신의 결과로 실업률이 증가한 사례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토머스 하이 위스콘신대 교수의 방대한 연구 결과다. 예를 들어 농업 일자리가 80%에서 2%로 줄었으나 78%의 농민이 실업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제조업을 거치고 서비스업을 거쳐 플랫폼 서비스업으로 창조적 파괴를 거듭해왔다. 이 과정에서 1인당 소득은 50달러에서 2만달러까지 늘어났다. 농업 생산성은 100배가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자본과 노동의 역할은 미미했다. 대부분이 기술혁신의 성과다. 소수의 인력으로도 의식주의 생존 욕구를 충족하게 되면서 상위 욕구인 안정 욕구와 사회적 욕구, 자기 표현 욕망의 충족을 위한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됐다. 더 높은 부가가치의 일자리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기술은 일자리를 파괴하고 욕망이 일자리를 창출해온 것이 250년 산업혁명 역사다.
산업혁명에서 일자리가 파괴되는 것은 쌀로 밥을 한다는 것과 같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일자리에 대한 진짜 질문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되는 일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돼야 한다. 옥스퍼드·WEF·노동연구원 등에서 제시하는 데이터 분석가, 로봇 기술자 등 첨단 신기술의 생산성을 올리는 일자리가 더 많은 기존의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이 명확하다. 일자리는 기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왔다는 것이 산업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일자리의 진실이다. 창조와 파괴 과정에서 더 많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고부가가치 형태로 일자리는 진화해갔다. 일자리의 본질은 부가가치 창출과 분배의 연결고리다. 일자리의 창조적 파괴가 없는 국가의 국부는 정체되고 일자리의 질은 저하된다.
그렇다면 기술혁신만 잘하면 문제는 해결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생산성 증가로 파괴된 일자리가 미충족 욕망의 일자리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재교육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농업 기계로 파괴된 농업 일자리를 제조업으로 이전하기 위해 한 번의 교육이 필요했다. 그런데 과거에는 평생 한 번이면 충분했던 교육이 미래에는 평생 10회는 필요하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너무나 빠른 혁신 속도를 교육이 따라가지 못하면 기술과 일자리의 충돌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평생재교육체계가 병행 발전하면 기술혁신에 따른 마찰적 실업은 최소화될 것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4대 국가정책은 ①기술혁신 ②미충족 사회적 욕망 발굴 ③일자리안전망 ④사회안전망으로 정리된다. 미래 일자리는 지금의 단순노동·정보수집·지식산업에서 복합노동, 체험과 경험, 문화와 행복 산업으로 거듭난다. 지금은 모르는 수많은 일자리가 유연한 일의 형태로 등장한다. 이러한 롱테일의 다양한 일자리를 연결할 일자리 플랫폼도 필요하다. 미래 일자리는 파트너로 구성되는 내부 일자리와 수많은 개방 협력에 참여하는 롱테일의 일자리로 구성된다. 특정한 일자리 형태로 미래 일자리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고용노동부의 기존 일자리에 기반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제도는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미래 일자리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일자리가 65%를 넘을 것이라는 게 WEF의 주장이다. 미래 일자리의 예측이 아니라 미래 변화에 대응하는 기업가정신을 키우는 것이 미래 일자리 정책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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