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가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과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를 진보적 역사관을 담은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보수-진보 갈등이 재점화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를 보수-진보의 시각에 따라 편향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으며 더욱이 교과서 기술에서의 객관성과 공정성·신중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되는 것은 학생들의 역사 교육조차 정권의 입맛에 맞춰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교과서를 검정체제로 바꾸고 박근혜 정부에서 이를 다시 국정으로 바꾸려 한 것도 그렇고 역사교과서의 내용에서 논란이 된 것들도 정치적·이념적 편향성이 문제 될 수 있는 사항들이었다. 물론 잘못된 기술, 왜곡된 표현을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 또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잘못된 기술, 왜곡된 표현인가.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이념으로 한다. 그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역전 앞’처럼 동어반복의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 맥락을 살펴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좋은 정치, 좋은 정부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으며 가장 독재적인 체제라고 할 수 있는 북한조차도 이른바 ‘인민민주주의’를 자처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 것은 남북한의 대립 속에서 북한식 사회주의, 이른바 인민민주주의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에 이어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겠다는 것은 마치 남북한이 ‘민주주의’라는 공통분모 아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오도(誤導)할 우려가 크다.
북한의 인민민주주의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일 수 없음은 물론이고 현행 헌법 제4조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명시하고 있다. 남북한의 통일은 남한과 북한의 공통점을 찾아 통일국가의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의 올바른 실현이 가능한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더욱이 개헌 논의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해 지난 3월26일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서도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존치했음에도 역사교과서에서 이를 바꾸려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 곤란한 것은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근거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을 삭제한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 제3조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조항이 바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것과 직결돼 있음을 알면서도 이 표현을 삭제한다는 것인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후에도 헌법 제3조에 근거해 북한을 불법집단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북한은 한편으로 통일을 지향하며 교류·협력의 대상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평도·천안함 사건 등 적대적 대립이 종식되지 않았고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태에서 국가보안법 등의 합헌성도 인정된다는 것이다.
또 헌법 제3조에 근거할 때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중국에 있는 탈북자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되며 북한 정권의 붕괴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사항에 대한 고려 없이 북한을 합법정부로 인정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오히려 그 위헌성이 문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과 관련해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과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은 반드시 재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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