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사람만큼이나 질병도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시대다. 중동에서 시작된 메르스가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인류에 도전장이라도 내밀듯 변종 염기서열의 신종플루가 잊을만하면 등장해 전 세계를 떠돈다.
돌이켜보면 인류의 역사는 늘 질병과 약의 투쟁사였다. 멜서스의 저주에라도 걸린듯 괴혈병, 말라리아, 매독, 에이즈 따위의 치명적인 질병이 역사적 순간마다 인간의 발걸음에 제동을 걸었다.
역사의 항로에는 숱한 변인이 있어 단순한 논리로 과거를 가정해보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 재미는 있다. 가령 16세기 대항해시대에 바스쿠 다 가마와 마젤란이 비타민C를 알았다면 대영제국이 아니라,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세계를 제패했을 것이라는 것, ‘예수회의 가루’라고 불리는 말라리아 약 퀴닌이 스페인 선교사들의 손을 거쳐 중국에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강희대제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며 청나라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 판도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 같은 것들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타민C, 마취약, 소독약, 페니실린, 에이즈 치료제부터 누구나 한 번쯤 복용해본 아스피린까지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고 이 약들 덕분에 인류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구를 수 있었다. 1만6,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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