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총수 일가 자택에서 확인된 이른바 ‘비밀공간’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창고”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세관이 압수수색 당시 확인한 ‘비밀공간’은 책꽂이와 옷으로 가려진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대한항공 측의 해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목이다.
4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관세청 인천본부세관이 이틀 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사는 서울 평창동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인한 비밀공간은 총 3곳이다. 이 중 2곳은 지하와 2층 드레스룸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나머지 1곳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세관 당국은 3곳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장소라는 점에서 모두 ‘비밀공간’인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3곳 중 2곳은 각각 책꽂이와 옷가지 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가려진 정황이 포착됐다. 책꽂이와 옷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사람이 드나들기 힘든 비밀공간이라는 의미다. 이는 “한진 일가 자택에 비밀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한항공 측의 공식 해명과 정반대 사실이다. 대한항공 측은 지난 3일 “자택 2층 드레스룸 안쪽 공간과 지하 공간은 누구나 발견하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며 특히 지하 공간은 평소 잘 쓰지 않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용도라고 주장하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세관은 조 회장 자택의 ‘비밀공간’을 확인하기 위해 비파괴검사 장비와 전문가 3명을 동원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비파괴검사는 구조물 등의 원형이나 기능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내부 균열을 검사하는 방법으로, 주로 원자력발전소 안전점검 등에서 활용된다. 세관이 이런 비파괴검사 장비를 동원한 것은 외관상 확인이 불가능한 벽 너머에 은밀한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압수수색 과정에서 비밀공간 3곳이 차례로 발견되면서 해당 장비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관은 한진일가 자택에서 비밀공간을 찾아냈지만 해당 공간에 밀수·탈세 혐의 관련 물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진일가 측이 비밀공간을 적극적으로 숨긴 정황이 포착되면서 밀수·탈세에 대한 의구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달 세관의 1차 압수수색 이후 한진 측이 밀수품으로 의심을 받을만한 물품을 외부로 옮기는 ‘정리’를 이미 진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관세청 관계자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추가로 확인된 이 공간은 모두 한진일가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비밀공간이 맞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서영인턴기자 shy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